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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8. 2024

<엔지니어링>

초단편 소설 - 9



 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 도중, 시험비행에서 전투기가 180도 뒤집힌다. 조종사의 기지로 사고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고도설정 시스템에서 적도 위를 플러스, 아래를 마이너스로 표기하는 바람에 에러가 났다. 전투기의 시스템은 북반구에서 태어난 엔지니어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은 적도 아랫부분 역시 위도의 앞에 N을 붙이는 것을 제외하고 양수로 표현하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하등 상관없었다. 그들, 정확히는 미국인들에게 전투기란 아래를 향하든 위를 향하든 폭격만 하면 되는 제품이니까.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독일과 스위스가 두 나라를 잇는 도로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두 나라의 엔지니어들은 각자 자신에 실력에 확신했고, 각자의 나라에서 도로를 따로 지어 가운데에서 만나자고 협의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이어질 때쯤 높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다리를 지을 때 필요한 해발고도가 두 나라에서 달랐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북쪽 바다를 기준으로, 스위스는 남쪽의 지중해를 기준으로 해발고도를 잡았다. 그 차이는 채 일 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심각한 결함을 발생시켰고 결국 프로젝트는 다시 처음부터 검토됐다.


  이러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공학이란 그렇다. 공학에 이용되는 수치들은 자주 근사치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숫자들을 계산하고 이용하는 프로세스와, 그 숫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것들은 정확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선이 지구 대기를 탈출하다가 폭발하고, 발전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혹은 잘못된 계산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이는 모두 아주 작은 실수에서 비롯된다.


  나는 공학이 골프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시작할 땐 헤드가 아주 큰 골프채로 홀까지의 거리를 좁히고, 그린 위에서는 정교한 퍼팅을 위한 골프채를 사용한다.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이 혼재된,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하는 스포츠. 얼마 전 봤던 영화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에서는 골프를 처음 접한 남자가 주최 측의 규정을 교묘히 피해 대회에 나간다. 당연히 그는 파 5홀에서 더블보기를 훨씬 뛰어넘는 타수를 치고, 총 1라운드에서 +121이라는, 프로세계에서는 일부러 하지 않는 이상 전혀 나오지 못할 점수를 남긴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모든 홀을 소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골프의 근본 목표인 ‘공을 홀에 넣는 것’을 달성했다. 공학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시행착오를 얼마나 거치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른 결과들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고, 개선할 사항이 있다면 고치고 수정해서 나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닥친 시련은 만만치 않다. 지금 우리 집엔 강도가 들었고, 나는 골프채를 들고 그를 상대하고 있다. 그는 내 아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돈을 요구한다. 손에 땀이 나서, 자꾸 골프채가 밑으로 흘러내린다. 나는 다시금 엄지를 채에 밀착하면서 복면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 중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그는 왜 우리집에 왔는가? 모든 것이 카드와 전자결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에서, 이러한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저지르는가? 여긴 교외에 있는 곳이라 소리를 질러도 이웃이 알 수가 없고, 우리 집엔 경찰서로 연락이 가는 비상 연락 버튼 같은 것도 없다. 이 집을 설계할 때 내가 빠트린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점점 더 격양된다. 목소리가 빨라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총기류 또한 공학의 산물이다. 총은 아주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의 스프링이 움직이면서 탄창에 놓인 총알이 하나씩 발사되는 방식이다. 너무나도 간단한 원리로 제작되기 때문에, 대량생산 또한 어렵지 않다. 이러한 발견은 지금까지 수천만 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제품이다.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불량품이 있고,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고장이 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의 총이, 생산과정에서 일어난 결함 혹은 관리부실로 일어난 실수로 인해 작동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때마침 무슨 일인지 집에는 정전이 일어나고, 나는 그때를 틈타 손에 있는 골프채를 그의 머리로 휘두른다. 동시에 ‘뻥’하고 큰 소리가 들린다. 그가 단 한 방에 무언가를 맞힐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훌륭한 골프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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