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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12. 2023

동뿡이

초보아빠X초보운전자 결국 차를 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역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10년 정도 하는 동안 차도,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면허를 따기 전에는 심지어 어떤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는 30대 남자를 1로 치면, 넌 0.7이야. 인마. “


물론 이렇게 구박한 이유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기는 했었다. 예전에 영어회화학원을 잠깐 다닐 때 미국인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미국에는 DD(Designated Driver)라는 게 있다고 한다. 어떤 술모임이 있으면 누군가 한 명이-보통은 돌아가며- DD가 되어 그날 술자리에서 음주를 하지 않는 대신에 차를 운전하여 친구들을 집으로 배송(?)하는 역할을 한다. 그니까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DD로 쓰기에 딱인데… 이 놈이 면허도, 차도 없으니. 술도 같이 안 먹어. 70프로 인간 취급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차를 사지 않았던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우선 돈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적금을 들었지만 차를 살만큼 거금을 쓸 깜냥도 안 되었다. 차를 사도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더불어 서울은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아니다. 문제는 의지와 동기였다. 그냥 운전을 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고, 또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동기도 없었다. 결혼 전 아내는 같이 걷고 버스와 전철을 타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속마음은 잘 모른다-. 일터에서도 내게 운전을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그 덕에 부장님들과 심지어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운전을 하셨지만… 어쨌든 꽤 오랜 시간 동안 운전을 안 한다는 점은 내게 이렇다 할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아. 이 나이 먹도록 면허 안 땄다고 하면서 아이스브레이킹하는 작은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으니 뭐, 이득도 있었나 보다.


그런 나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21년 초 면허를 따고 3월에 중고차를 한 대 구입하였다. 아이를 키우는데 차는 꼭 필요하다고 주변 모든 이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또한, 차종은 꼭 SUV여야 한다고 하였다. 역시나 육아에 필수라는 게 그 이유였다. 중고차 어플로 며칠을 살피다 아내의 선택에 따라 큰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하였다.

첫 차에 처음 제대로 앉았을 때 생각보다 작은 핸들이 어색했다.

우리가 결정한 차는 출고한 지 3년 정도 되었지만 주행거리는 2만이 갓 넘은 휘발유 먹는 구름 색 큼식이(QM6)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닛산 엔진으로 170마력 밖에 되지 않아 큰 덩치에 작은 심장을 가져 잘 안 나가는 차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선호한다고… 그래도 가속페달의 감도에 둔감하고 속도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딱이었다. 그 외에도 에어컨 필터 갈기의 난이도가 지옥이라던가 엉뚱한 데 USB 포트가 달려 있다거나 배터리가 쥐약이라거나 하는 단점도 그다지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구매했다는 점. 내부가 작지 않은 차여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타고 다니기에 공간이 충분하다는 점 등이 만족스러웠다.


아내는 내 별명에 방귀로 차가 굴러간다고 '뿡'을 더해 '동뿡이'로 지었다. 아는 형님께서 대시보드에 깔라고 검은색 털로 된 커버도 하나 선물해 주셨다. 몇 년 전 모시던 부장님은 막걸리를 하나 사셔서 네 바퀴에 뿌려 출고식을 간단히 해 주셨다.


이 차로 지난 2년 동안 출퇴근을 하고 가끔은 외곽으로도 다녔다. 300km 가까이 되는 고향 집도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고, 처가도 그보다 더 자주 다녀왔다. 함께 인천, 속초, 대전, 의정부 등지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차를 구입한 지 2년이 넘어서 겨우 만 킬로를 추가해 현재는 3만 킬로 정도 탔다.


운전 초기에 뒷유리에 붙여 놓은 '초보운전' 딱지는 스티커 떼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도 붙어 있다. 새 차를 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올여름 걸레로 차 안의 먼지를 닦아 낸 게 다였다. 이 정도면 차에 애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말을 들어도 반박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차가 마음에 든다.



사람의 취향은 가지각색이지만 나는 이 전면 디자인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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