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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21. 2023

아이의 언어발달.

모국어 습득의 놀라움.

 

뭐 누가 인정할 까만은, 나는 나름 응용언어학자이다. 대학에서 영어교육학과 영어학을 배우며 제1언어와 제2언어 습득을 공부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가정법이나 관계대명사 따위나 가르치면서 잃어가는 영어 실력과 언어학 지식에 자괴감만 느끼고 있지만. 한때는 외국어로써 영어를 배우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어떠한 단계를 밟아가며 영어를 학습하는지를 연구하고 싶었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한때는 그런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이가 말이 트이고 여러 가지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언어형식을 배우고 어떤 관념과 인지능력이 생겼는지를 엿볼 수 있다. 동시에 나의 게으름으로 그런 것들을 어딘가에 기록해두지 못한 점이 후회되기도 한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기에는… 이미 아이가 매일매일 너무나도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어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 구체적으로 의미를 담은 단어로는 ’아빠‘와 ’아이씨‘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분명 엄마와 더 애착이 있는데, ‘아빠’라는 말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를 말하기 시작했고, 요즘도 가끔 ‘엄마’를 말하고 싶은데 ‘아빠’라 먼저 말하고 스스로 교정하여 다시 ‘엄마’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씨’의 경우, 나와 아내의 언어 사용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무의식 중에 우리가 자주 ‘아이씨’라고 했다는 걸 아이가 그 말을 입에 담기 시작하며 깨달았다. 요즘은 조심하고 있다.


한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시기 동안 우유를 뜻하는 ’우아‘라던가 ’멍멍‘이나 ’야옹,’ ‘삐약삐약,‘ ’음메‘ 같은 동물 울음소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우아‘라 말하는 장면을 아내가 영상으로 찍었는데, 아이는 요즘도 그 영상을 좋아하며, 때로는 그 영상에 대해 스스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가 어릴 때 우유를 ‘우아’라고 불렀고 지금은 제대로 ‘우유’라 발음한다고.


그 후 두 단어 정도를 연결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언어습득 분야에서는 이런 말을 중심축 문법(pivot grammar)이라 하는데, 예를 들어, “엄마 우아” 혹은 “엄마 까까” 같이 두 명사를 연속해서 말하는 경우이다. 이는 엄마에게 우유나 과자를 달라는 뜻을 지녔다. 이런 말속에서 아이는 ‘우아’나 ‘까까’라는 명사에다 ‘우유나 과자를 먹고 싶다’는 동사의 의미까지 담아 표현하였다.


두 단어를 말하는 짧은 시기를 지나자 어느 순간 아이의 표현력은 폭발했다. 가히 폭발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했다. 시작은 노래였다. ‘곰 세 마리’나 ‘작은 별’ 같은 노래 가사를 어설픈 율동에 맞춰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푸른 하늘 은하수’ 같이 가사가 많은 곡은 부정확한 발음에 중간중간 가사를 빼먹긴 했으나 끝까지 부르게 되었다. 아마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내와 음악에 나름 재능이 있는 내 영향일 테다.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꽤나 잘 소화하는 아이를 보면 유전의 힘이 장난이 아님을 느낀다.


한때 사모했던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라는 언어학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언어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초기에 이를 언어습득기제(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라 지칭하였고, 나중에 이를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 UG)이라 하였다. 아이의 언어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직접 보면서 나는 촘스키가 왜 이런 개념을 만들었는지를 피부로 깨닫고 있다. 분명히 노출한 언어정보보다 더 다양한, 더 새로운 단어나 구조를 아이는 사용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이의 사고 역시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자라난 듯했다. 아이가 생후 3일째, 아내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저귀를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촬영한 영상이 있다. 아이는 배가 고파 굉장히 세게 울고 있고 산후도우미 분께서 아내에게 기저귀를 가는 법을 알려주는 데, 아이는 한 때 그 영상을 즐겨 봤다. 자기가 갓난아기일 때 배가 고파 저렇게 운다 설명해 주고 나서는 내가 “ 왜 울고 있지?”라 물으면 아이는 “배고파서”라고 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 설명을 외워서 말하는 거라 여겼는데, 여러 다른 상황에서도 아이가 맥락에 맞는 답을 하면서 분명히 원인을-아이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해하고 말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의자에 올라가면 안돼, 넘어져서.”처럼 직접 인과관계를 말한다.


아. 자랑을 좀 하자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팝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뜻을 이해하며 부른다기보다는 발음과 멜로디를 무작정 습득한 것이지만. 아내는 Ben Folds라는 뮤지션을 좋아하는데, 아이의 돌 기념 영상을 만들며 배경음악으로 그의 <Still Fighting it>이란 노래를 사용하였다. 아이가 이 영상에 빠진 때가 있었는데 이때 노래를 배운 듯했다.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 가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기타 코드를 따서 한동안 아이와 같이 즐겁게 불렀다.


조기영어교육을 꽤나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나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거나 어릴 때부터 일부러 영어에 노출시킬 생각은 없다.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자막 없는 영어 만화를 보여준다거나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나 아내나 팝송을 좋아하다 보니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팝송을 듣고 영상을 보는 일은 많을 듯하다.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영화 <Sound of Music>에 있는 <Do-Re-Mi song>이나 <My Favorite Thing> 같은 곡을 자주 보곤 한다.


확실히 노래는 아이의 언어발달을 촉진하는 듯하다. 최근에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합창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4절까지의 가사를 거의 다 외웠다. 그 끊임없는 긴 가사만큼이나 요즘 아이의 언어사용은 끊임이 없고, 아이는 언어를 스펀지처럼 끊임없이 흡수하는 듯하다.


아직 주격조사의 사용이 틀린 경우가 많고-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 현상- 정확하지 않은 발음도 있다. 주격 조사 ‘이/가’를 구분하지 않고 어떤 단어 뒤든 전부 ‘이가’를 함께 붙여 쓴다.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어흥’이 아니라 ‘어긍’이라 한다. 동요 <둥글게 둥글게>의 후렴을 ‘링가링가링가’가 아니라 ’징가징가징가‘라 부른다.


아아. 주의해야 한다. 모든 부모에게 자신의 아이는 영재일 것이다. 김칫국부터 마시고 나중에 아이에게 실망하거나 아이를 몰아세우는 일을 하면 안 될 것이다. 시기는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언어습득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더욱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언어 사용의 질적, 양적 풍부함은 아동의 언어 습득이 끝난 후, 수많은 독서와 글쓰기 같은 후천적인 노력에 더 좌우된다. 나처럼 어릴 때 독서를 많이 안 하면 맞춤법을 많이 틀리거나 어휘가 풍부하지 않거나 좋은 글을 못 쓸 수도 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나와 아내가 직접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요즘 아이는 나와 아내의 대화에서 쓰이는 여러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때로는 거기에 반응하기도 한다. 아이 앞에서 대화할 때 굉장히 눈치를 본다. 놀이를 할 때 사적언어(private speech)도 관찰할 수 있다. “치카치카하고, 워워퉤하고 아빠 햅듭폰-아직 제대로 발음을 못한다- 보자”라 말하며 시간과 사건의 순서에 맞게 문장을 나열하기도 한다. 놀랍다. 언어의 창의성(creativeness)이나 생성성(generativity)처럼 언어습득이론에서 배운 개념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내가 아이의 응가기저귀를 갈면서 흥얼거리다 만든 노래를 아이가 장난감을 만지며 똑같이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신기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유치하지만 가사를 소개하자면.


응가했어요 응가했어요
우리 OO이 응가했어요
방구도 뀌고 응가도 하고
역시 우리 OO이

OO이는 응가하고 아빠는 방구 뀌어요
셋 넷

아빠 닮아서 둘 다 잘해요
누가 뭐래도 아빠 딸이죠
방구는 뿡뿡 응가는 뿌직
역시 우리 OO이
처음 아내가 만든 응가송을 흥얼거릴 때 찍은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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