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두려움?
열흘 정도 감금을 당했다. 이미 새해가 오기 전부터 잠정적으로 글쓰기를 중단했었다.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의식의 흐름과 같은 글은 쓰기 싫어서 그런 듯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보다 깊은 생각과 많은 자료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한 글은 쓰기 귀찮기도, 잘 쓸 자신도 없어 쓰지 못했다. 머리 한쪽 귀퉁이에 써야 되는데, 읽어야 되는데, 하는 불쾌한 찝찝함이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스마트폰도 빼앗긴 채 감금당했던 그 시간은 더 안심이 되었다. 물리적으로 글을 못 쓰게 되었다는 핑계가 컸으리라.
여하튼 감금 기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더더욱 글을 쓸 용기를 잃어 간다. 명절을 쇠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아이와 아내를 재웠다. 티브이도 못 켜는 이런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신세한탄이나 넋두리 밖에 끄적이는 것 밖에는 못하겠다.
감금당한 동안 용한(?) 한 교수님께서 손금을 봐주셨다. 굉장히 엘레강스한 분인데 할머니의 영향으로 손금을 잘 본다는, 좀 특이하신 분이었다. 그분이 봐주신 내 운명에 관해서 크게 세 가지 기억나는 말이 있다. 첫째, 나는 굉장히 오래 살 거라고 한다. 말년에 큰 고비가 한 차례 오지만 겁나게 장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병’ 장수 인지는 알지 못한다. 건강히 살지 말지를 떠나서라도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난 적당히 살다 많이 아프기 전에 죽고 싶으니까.
둘째, 타인이나 외부의 영향에 취약하여 놀라울 정도로 많이도 상처를 받아 왔고, 받고 있고, 당분간은 더 받을 거란다. 그리고 45세 전후가 되면 마음이 단단해지며 이런 슬픔이 좀 무뎌진다고 한다. 가슴을 때렸다. 나의 소극적인 인사를 무시하고 씹었던 많은 사람들. 아마 일부러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그중 대부분은 분명히 나의 오해에서 기인한 피해의식이었음이 틀림없다. 때론 그들도 역시 나와 같은 소심한 인사를 했으나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들이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 수백 번 되뇌었지만, 그래도 답답해지고 무거워지는 가슴을 덜어내긴 쉽지 않았다. 한 5년 정도 후딱 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는 음악이나 글, 예술에 재능이 없으니 그런 쪽에 너무 몰두하지 말라 하였다. 어차피 성공 못할 테니. 엥? 솔직히 음악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었다. 내가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독학으로 기타랑 드럼을 배운 사람인데. 그것도 그냥 적당히가 아니라 꽤나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돈데. 처음엔 갸우뚱했다. 그러나 금방 납득이 되었다. 그렇지. 요즘 트렌드를 잘 따르는, 남들이 찾는, 다시 말해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다시 말해 리스너의 요구와 욕망을 읽는다는 지점에 있어서 나는 한 없이 재능이 없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듯하다. 물론 역량 부족이겠지만, 좋은, 그래서 남들이 찾는 글은 못 쓴다.
예전에 러시안 집시카드나 타로카드를 가지고 놀면서 재미로 점성학(astrology) 같은 것에 흥미를 가지곤 했다. 사주팔자를 잘 보시는 부장님이 계셔서 올해는 한번 그분을 찾아뵙자 마음먹기도 했다. 얼마 전 읽기 시작한 칼 세이건의 <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언급한 ‘라플라스의 악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고 하여 내 흥미를 끌었다.
때로는 영화나 웹툰의 스포일러를 미리 찾아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겁 많은 내게 미래의 불확실성은 참기 힘든 무언가이다. 감금당하여 연락이 닿지 않은 사이에 아내나 아이가 아프거나, 혹은 사고가 나는 상황을 혼자 떠올리고는 몸서리치기도 했다. 많은 일을 하면서 나의 실수나 다른 이유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최악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떤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조심성은 필요하지만, 나는 꽤 과하게 부정적인 미래에 몰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게 힘겹다. 아마 나와 함께 지내거나 일하는 이들도 피곤할 테다.
이영도의 <폴라리스 랩소디>에는 ‘일몰의 왕 라오코네스’라는 큰 드래건이 등장한다. 그는 ‘순간을 지배하기에 영원을 지배하는 자’라는 이명이 있다. 이 말을 좀 뒤집어서 장난을 치면 ‘순간의 행동과 판단이 차곡차곡 쌓여 영원이 된다’라 말할 수 있다. 즉, 나의 미래라는 놈은 과거의 내 판단과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이미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진지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내 과거를 잘 알기에 불안한 미래를 그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점을 보기도 하고, 스포일러를 찾고, 외출할 때 멀리 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스 잠금장치를 한번 더 확인하기도 하나 보다. 스스로를 과하게 변명하고 실수한 일은 더 부각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그러나 보다.
5년 정도만 좀 참자. 그때쯤 마음이 좀 단단해진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