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일기
일요일 저녁 9시가 조금 지나 아내와 아이와 함께 침실로 들어갔다. 감기 기운이 있는 아내가 마스크를 낀 채로 아이에게 동화책을 두 권 읽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든 <불편한 편의점>을 마무리했다. 안경을 벗고 아이의 동의 하에 불을 끈다. 그러나 소등은 잠듦의 끝이 아니라 잠듦의 시작을 알린다. 아이는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했다가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려 했다가 칭얼댄다. 어두운 가운데 외할머니가 사주신 보드라운 털 가운을 입혔다.
나는 구석에 누워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기 시작한다. 명상을 하기 좋은 조건은 아니다. 아이는 흐느끼기도 하고 엄마에게 땀을 닦아달라 하기도 한다. 발로 나의 오른팔과 옆구리를 걷어차거나 비빈다. 마스크 속 아내의 코 막힌 숨소리. 아이가 이불을 들쳤다 덮는 소리. 낡은 아파트 천장에서 벽지가 시멘트에서 벌어지며 미세하게 저저적 저저적 거리는 소리. 호흡에 집중하며 몸 여기저기를 관찰하고 힘을 빼려 노력한다. 명상은 애써서 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살짝 가쁘고 불규칙한 심장 소리가 불안하다. 언제나 굳어있는 미간의 근육을 살며시 살며시 풀다 보면 볼 근육의 긴장도 풀린다. 화선지 위 거친 붓으로 그린 달마의 초상화에서 검은 묵이 푸른 물에 풀려 옅어지듯 얼굴 근육이 슬며시 풀린다. 오후에 아이와 놀아주며 배밀기 팔 굽혀 펴기를 한 어깨가 살짝 시린다. 어깨와 팔 근육의 긴장도 가라앉힌다. 가볍게 숨을 들였다 내쉬면서 의식을 몸 아래로 흘려보낸다. 시큼한 오른 무릎과 발목 뒤 아킬레스 부분을 의식으로 어루만진다.
아이가 툭툭 칠 때도 있지만 내 명상을 방해할 만큼 큰 문제는 없다. 뒤척이는 아이의 움직임에 침대 표면은 수면 위처럼 아주 작게 흔들린다. 내 몸은 그 흔들리는 물속으로 천천히 침잠한다. 다 풀렸다 여긴 미간 근육은 한 단계 더 풀린다. 어느새 내 정신은 아득해진다. 위아래로 닫힌 눈꺼풀 근육의 힘도 풀려 까딱하면 눈이 살짝 떠질 기세다.
맥락 없이 생각이 떠오른다. 미완인 채 2년이 지난 소설의 뒷 이야기. 요즘 쓰고 있는 교육 관련 글 이야기. 나는 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손금 이야기. 수능 감독이 펑크나 갑자기 불려 가는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년에는 글을 쓰고 있을지 공부를 하고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오른 생각은 겨울 아침 흐트러지는 담배연기처럼 끝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사라졌다 다시 뿜어졌다 한다. 생각에 몰입할 기미가 보이면 다시 코끝 차가운 숨과 미간을 찾는다.
아이가 뒤척이는 횟수의 간격이 벌어지며, 때로는 살짝 코를 골다 말고, 움직임의 세기도 약해진다. 아득했던 내 정신은 다시 지하 깊숙이 가라앉은 몸에 돌아온다. 주변이 또렷해진다. 온몸을 감싼 얇은 여름 이불의 까글거림을 느낀다. 몸이 따뜻해진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다. 조용하고 느리게,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폐와 복부에 공기를 가득 채웠다 내뱉는다. 호흡이 충만함에서 오는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낀다. 꽤나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았던 팔과 다리의 관절에 고양감 있는 뻐근함이 있다. 손가락 발가락을 살며시 움직인다.
아이는 이내 잠들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내도 푹 자길 바란다. 내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부딪히는 현실은 몸과 마음을 긴장시킨다. 근육은 굳고 심장은 두근거린다. 순간순간 울컥하거나 짜증이 올라온다.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도 무시 못한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불완전한 인간과 부대끼는 한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요동이다. 그래도 외로움보다는 낫겠다 위로한다. 주기적으로 차분히 몸과 마음을 가라앉힐 수단을 하나 찾았다.
And the waitress is practicing politics
웨이트리스는 요령이 좋다네
As the businessmen slowly get stoned
저 사업가들이 천천히 취해가는 걸 보니
Yes, they're sharing a drink they call loneliness
맞아, 그들은 외로움이라 부르는 술을 같이 들이켜네
But it's better than drinkin' alone
그래도 혼자 마시는 것보단 낫지
Billy Joel <Piano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