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담긴 냄비》

《감정의 과부하》

by 오은영


《가득 담긴 냄비》

이것저것을 넣어 버리니까
내가 너무 지루하잖아

풍선은 터질 수 있으니까
줄을 자르고 넣어

줄을 자르려면 가위가 있어야겠지?
가위도 어서 준비해

재료가 다 준비되었니?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가위를 넣으니
자기와 비슷한 가재가 따라 들어와

가득 담아질수록
나는 지루해져 가는 냄비야


《감정의 과부하》

이 시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냄비’에 비유합니다. 냄비는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그릇으로, 화자는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의 “가득 담아질수록 나는 지루해져 가는 냄비야.”를 보면, 감정이 쌓일수록 더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지고 마비되는 상태가 드러납니다. 즉, 이 ‘냄비’는 과부하된 감정을 견디다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이어 등장하는 풍선과 줄은 감정의 성질을 대비적으로 보여줍니다. 풍선은 부풀어 오르는 기대와 감정, 그리고 줄은 그것을 붙잡아두려는 통제의 힘입니다. “풍선은 터질 수 있으니까 줄을 자르고 넣어.”라는 구절은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고 잘라내려는 시도를 암시합니다.


여기서 감정을 절단하는 도구로 가위가 등장합니다. 가위는 날카로운 판단, 즉 이성을 의미합니다. 감정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일정 거리에서 재단하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가위를 넣으니 자기와 비슷한 가재가 따라 들어와.”라는 문장에서 감정을 잘라내려 할수록 되려 감정의 근원적인 형태가 되살아나는 역설이 나타납니다. 가재는 깊은 물속에 사는 존재로, 의식 아래에 숨은 원초적 감정을 상징합니다. 감정을 없애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생생하고 낯선 방식으로 되돌아옵니다.


결국 이 시는 감정을 억누르고 정리하고 다스리려 애쓰는 과정 속에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득 담긴 냄비는 비워진 것이 아니라, 너무 가득 차서 더는 맛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