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스톡홀름 그리고 스웨덴
최근 방학을 맞아 10일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오고 가는 날을 딱히 신경쓰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돌아오는 날이 미드소마 이브였다. 아마 아리 애스터 감독의 명작 영화..로 더 유명할 ‘미드소마’는 1년 중 해가 제일 긴 하지를 축하하는 날로, 스웨덴에서는 크리스마스만큼 큰 규모로 지내는 명절이라고 한다. 명절이니까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스톡홀름은 도시인만큼,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구랑 보내는 이들도 많은 것 같았고 특히 내가 공항에 내려 집까지 가는 오후 8-10시 무렵의 지하철은 지난 1년 동안 본 스톡홀름 지하철 중 가장 광기에 차 있었다.. 중앙역에서는 내 열차를 기다리는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토하는 사람을 두 명 봤고 무장한 경찰이 그 중 한 명을 바로 데려가는 낯선 광경이었다. 대략 40% 정도의 승객은 볼이 발그레해 보였달까.
그 날을 정말 신기한 날로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하철에서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지하철에서는 정말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마주보고 앉아도 눈을 안 마주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가 안 보이는 척, 모르는 척 하는데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런던에 다녀오면서 더욱 확실히 깨달았다, 이건 스톡홀름 종특(?) 이라고. 그런데 그 날은 미드소마의 광기가 서린 날이라 그런지(?) 건너 건너 옆 좌석에 앉은 한 세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여기 여행 왔냐고.
아마도 나의 짐을 보고 물어보시는 것 같아서 아아, 여기 1년쯤 살았고 잠깐 여행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뭔가 수줍어하는 표정이면서도 할아버지는 이런 저런 질문을 계속 던졌다. '런던이 여기보다 좋지? 런던이랑 스톡홀름 중 고르라면 어딜 고를거니?' 문득 유교걸의 자아와 1년 동안 키운 이방인의 감각이 튀어나와, '아휴 런던은 뭐 너무 붐비더라고요 스톡홀름이 여름엔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같은 대답을 했다. 이 질문은 곧 서울과의 비교로도 이어졌다. '서울 지하철은 여기 지하철만큼 좋니? 언젠가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니? 아니면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니?'
마지막 질문은 스웨덴에 온 이래 정말 자주 듣는 질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듣는 건 물론이고 같은 반 애들도 그냥 상습적으로(?) 물어본다. 인턴십은 서울에서 할꺼야 아니면 여기서 할꺼야? 졸업하면 돌아갈거야? 스웨덴에서 일할꺼야? 수줍은 스웨덴 친구들이 차마 묻지 못하는 ‘왜 스웨덴에 왔어?’를 돌려 돌려 묻는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내 입으로 스웨덴 칭찬을 좀 듣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궁금한 것 같기도 하고.
학기 초에는 특히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지금 보고 드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게 학교에서 받는 인상인지, 스웨덴에서 받는 인상인지. 아니 내가 스웨덴에 앞으로 계속 살고 싶은지 생각하려면 스웨덴이 어떤지 알아야 할 텐데, 학교가 강조하는 ‘inclusive’한 문화가 좋아서 스웨덴에 머물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니까. 내가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학교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사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지금 겪는 이 상황, 내가 이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이 감정이 이 학교를 떠나면 없어질 것인지 아니면 더 강화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온 머리를 쥐어짰다.
조금 더 시일이 지나고서는 이게 스웨덴인지 스톡홀름인지까지 나뉘어서 더 복잡해졌다. 살다 보니 스톡홀름과 다른 지역의 스웨덴은 또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만난 P는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동네에 살았는데, ‘스웨덴 시골'에 대해 치를 떨었다. 요약하면 옆집 앞집 뒷집 가가호호 수저 몇 벌까지 서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문득 몇 년 전 국정농단 사태 때 기다렸다는 듯이 빼곡한 수기 노트를 들고 나오던 독일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P가 겪은 일은 파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특정 인종에 대한 무례한 편견을 더해서 P의 늦은 귀가 시간에 대해 고나리 하는.. ‘스웨덴 사람들 개인주의 쩐(?)다면서요’ 라는 나의 납작한 편견에 돌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사는 날이 하루 하루 쌓이면서 매일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정보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구분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가능하다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각자의 버블 안에서 사는데,
다 알 수 도 없고 알아봐야 의미가 없는 일인 건 아닐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내가 앞으로 스웨덴에 남고 싶은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내가 고려하는 요인들이
1) 팩트인지
2) 학교를 졸업하고도 유효한지
를 구분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이 ‘구분'하고 싶은 마음은 앞으로 스웨덴에 남을지를 ‘옳게', 혹은 ‘정확하게’ 결정하고 싶은데서 비롯된 것인데 과연 이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은 ‘옳은’ 것이 될까?
1년 내내 들어 온 이 질문은 이제 내가 삶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라는 스스로에 대한 명령(?)으로 이어지게 됐다. 대니얼 슬로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직소>에서는 삶을 직소 퍼즐에 빗대는 비유가 나온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쳐 줬다는 이 비유에는 퍼즐의 네 귀퉁이를 가족, 친구, 취미와 직업으로 설명한다. 완성된 퍼즐의 큰 그림을 보기 위해 나는 어떤 귀퉁이를 제일 자신있게 맞출 수 있는지, 아니면 제일 맞추고 싶은지. 그것부터 알아야 어디서 퍼즐을 맞출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결론은.. 아직 스웨덴에 살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