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를 하지 않는 삶
작년 여름, 이탈리아의 한 해변에서 '남자처럼' 수영복 하의만 입고 태닝을 하는 여자를 보았다. 내가 여기서 남자처럼,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녀가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아주 편하게 자신의 가슴을 노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의 해변이라고 해서 모두가 노출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같은 순간 누군가 쳐다볼까 두리번 거리며 옷을 갈아입는 여자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나는 브라를 자주 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입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처럼 지냈는데 이탈리아에 사는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나는 브라를 하는 것의 개인의 선택임을 알았다. 겨울옷이 시작이었다. 두꺼운 겨울 옷을 입으니 티 안나겠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브라를 하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지만 알게됐다. 그 이후 브라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날은 일주일에 한두번이 될까 말까. 옷이 얇아져도 나는 점점 자신감이 붙얻다. 솔직히 나랑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노브라인걸 눈치 챘는지 안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았고 정말 너무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노브라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남자의 유두가 형태로 보이는 것도 불편하다.’ 라며 우회적인 반대의 의견을 비춘다. 하지만 누군가의 몸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가. 완곡한 척하지만 결국 내 눈에 보기에 거슬리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이 '너는 내 기준에 아름답지 않아 나를 불편하게 하는구나.'하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또한 당신이 불편하면 안 보면 된다. 유두는 인간의 몸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옷으로 가려져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남들의 유두를 많이 봤다. 내 눈에는 그게 보인다. 하지만 이탈리아인인 내 친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의식하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유두란 내 눈보다, 내 코보다, 내 입보다, 내 귀보다, 내 몸의 드러나는 그 어떤 부분보다 작다. 그것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가 의식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남의 몸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