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자신은 늘 '평범하다'는 말을 들었다
*제목은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 송지현 소설집의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의 한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 주떼
오츠 언니에게.
언니가 저번 글에서 취향에 관해서 이야기 했지. 메이저한 취향과 마이너한 취향. 다수가 좋아한다는 것과 소수가 좋아한다는 것. 다수. 소수. 단어만 썼을 뿐인데, 왠지 다수라는 단어에서는 권력이 느껴지고 소수에서는 소외가 느껴진다. 참 씁쓸하다.
대중적이라는 게 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난 그게 진짜 질이 좋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믿고 싶어. 물론 어떤 노래, 어떤 영화가 정말 좋을 수 있지. 그래서 대중적으로 사랑 받을 수도 있어. 하지만 대중적이라서 꼭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믿어. 또,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저평가 되어있을 수도 있지. 실제로 현대에 유명한 화가들 중에는 살아생전 한 번도 인정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잖아?
사실 나는 홍대병이 조금 있어. 개인적으로 다수가 좋아하는 것에 그다지 끌리지 않아. 남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너무 남들이 다 하는 건 왠지 하기 싫더라고. 아마 내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이런 원석을 발견했다! 나만 안다! 라고 하는 그 상황을 더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마이너 한 취향이냐고? 잘 모르겠어.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마이너이고 싶지만 마이너 한 것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사실 메이저 한 것들에 너무나도 노출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 정신을 차리지 않고 그저 들어오는 정보들을 선별하지 않고 멍하니 듣고 보다 보면 자꾸 보이고 들리는 컨텐츠에 정이 드니까. 그게 무서운 것 같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느샌가 중독이 되어있더라.
또, 어떤 분야에서는 메이저한 취향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에서는 마이너한 것 같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람들이 대부분 즐겨하는 취미는 아니더라고. 전시회 가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런데 이걸 즐기는 사람도 많은데 마이너 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를 뿐 마이너 하다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근데 이게 마이너라는 소리일까? 사실 마이너이고 싶어. 남들과 다르고 싶어. 하지만 어정쩡한 어떤 언저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언니처럼 메이너일까? 아니면 나도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두려워 마이너라고 단정지어 말하기 무서워하는 겁쟁이일까?
근데 자꾸 소수. 마이너 하니까 말이야. 가끔 보면 소수를 보면 손가락질 하는 다수를 간혹 마주치게 될 때가 있잖아?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수가 열세라고 해서. 다수가 소수에게 손가락질 하는 세상이 가끔은 미워. 다른 건 당연한 거잖아? 운이 좋았을 뿐이면서. 무슨 특권을 가진 것 마냥 구는 사람들.
메이저한 것들도 사실은 어느 시대를 잘 타거나, 사람들의 눈에 우연히 잘 노출이 되어서. 돈을 발라서 얻어지는 타이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은 사회적, 문화적, 시대적인 것들을 타고나는 것 같아. 마치 트로트처럼. 내가 어릴 때 네 박자를 진짜 즐겨 불렀거든. 20년 전에는 트로트가 유행이었는데, 한동안 어르신 분들만 듣던 장르였지. 그런데 갑자기 유산슬이 빵! 하고 띄우면서 온 국민이 트로트 열풍이 불었잖아? 불과 1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지. 그럼 트로트를 좋아하는 건 마이너한 걸까 메이저한 걸까? 메이저와 마이너는 누가 정하는 거지?
80년대 가장 유명했던 사람들, 90년대에 유명했던 사람들, 노래. 영화, 드라마 이런 것들은 모두 시간의 흐름을 타고 더 이상 사랑받지 않잖아. 지금까지 물론 유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대를 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영원히 메이저한 것도 없을 거고, 영원히 마이너한 것도 없을 거야. 그래서 지금은 마이너인 것이 이후에는 메이저가 될 될 수도 있고. 메이저인 것도 마이너한 것이 될 수 있지.
그럼 내 취향도 언젠가는 메이저가 될 수도 있는 마이너일 수도. 누군가가 내게 내 괴상한 취향을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설명하지 않을래. 어디선가 들었어. ‘당신을 설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차피 듣지 않을 것이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이 애써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당신을 이해할 것입니다.’ 언니에게서 배운 쿨감은 여기서 발휘되어야 하는 걸지도. 배째라 그래. 내 짧은 남들 취향에 맞춰주기 힘들다. 즐거운 것만으로도 채우기도 부족하니까.
- 오츠
주떼에게.
먼저 이야기할 게 있어. 내가 내 친구들이랑 하는 메이저와 마이너에 대한 이야기는 100프로가 장난이야. 놀리려는 마음이 담긴. 물론 어느 정도 팩트가 가미된 장난이어서 타격감이 제로는 아니지만 나는 그 장난에 대해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고, 또 너처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래서 너의 글을 읽으면서 좀 당황했어. 내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지. 메이저가 아니라는 것에 충격 받은 것 자체가 실은 은근히 (나도 모르게) 메이저 속에 들어가고 싶었던 내 욕망이었던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 때로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가 있곤 하잖아.
난 사실 다수라는 단어에서 권력을 느끼진 않아. 취향의 다수성과 소수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메이저 취향이 좋은 것은 수요가 많은 만큼 공급이 많이 된다는 것 정도지. 손가락질할 이유도 없고 받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소수를 보며 손가락질 하는 다수라니. 나는 아직 내 취향을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사람들이 바보처럼 느껴져. 다수의 취향이라고 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다수의 취향이라고 질이 나쁘지만도 않잖아. 대중적인 건 대중적인 것만의 매력이 있지. 내 기준에서는 쉽고 간편하게 많은 것을 취할 수 있는 것이 대중적인 것의 메리트거든. 그리고 대중적인 것이 때로 훌륭할 때도 있잖아. 대중적이지 않다고 한 사람의 취향을 저평가하면서 훌륭한 작품이나 음악, 그 모든 것을 접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기도 해. 그런 식으로 인생의 한 부분을 전부 놓치게 되어버리는 거잖아.
쓰면서 생각하는 건데, 그건 나한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 것 같아. 내가 듣지 않는 멜론 탑백 노래 중에서 훌륭한 노래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것들이 운 좋게 내게 온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스쳐 흘러가겠지?
어쨌든 분명한 건 다수가 취하는 대중적인 문화에 따르기만 하는 것을 내가 지양한다는 사실이야.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남들과 다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는 내 자아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종으로서 취향 전시를 선택한 거지.
홍대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수의 아름다운 것들을 남들이 알아줬으면 좋겠거든. 왜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고 있는 거지?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어. 노래 하나를 들어도 이 노래가 그 만큼 평가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왜 이 좋은 노래를 몰라 주냐고. 그럴 때마다 아쉬워. 내 일도 아닌데 억울하기까지 해. 주변 친구들에게 영업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확고하더라. 아니면 내 영업력에 문제가 있는 건가? 너는 니 취향도 언젠가는 마이너가 될 수 있고, 메이저가 될 수도 있다고 했지. 나는 내 취향들이 언제나 잔뜩 메이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시대가 변할수록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졌잖아. 예전처럼 한정적인 문화 안에서 취향을 나누는 게 아니게 되어서인지 취향의 바운딩도 다양해진 것 같아. 나는 세세하게 나누고자 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취향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게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 같달까. 그래서 새로운 경험도 많이 시도해보려고 하는 편인데, 요새 들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것들에 대해서 도전해보는 게 망설여진다?
예를 들면, 나는 20살 때 복싱을 했어. 굉장히 즐거웠지. 그래서 최근에 무에타이를 배우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등록을 했어. 근데 20살 때보다 재미도 보람도 없더라. 너무 힘들기만 했어. 결국 원래 하던 필라테스로 돌아가게 되었지. 이제는 동적인 운동보다는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야. 그래서인지 주짓수를 언젠가 한 번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등록을 미루고 있어. 이렇게 취향으로 인해 내 세상이 좁아지는 것, 과연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