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도를 시작하며

지난 한 해 수고 많았어

by 주떼

<<19살의 나와 29살의 나의 마음의 거리>>

-오츠


주떼에게


안녕. 이건 2021년도 첫 교환일기야. 속도는 더디지만 나름 1년차가 되었네. 이 점은 우선 축하하고 시작하자. 너도 나도 힘든 2020년도를 이겨낸 것. 느리더라도 계속 하는 일이 하나 정도는 생긴 것. 전염병으로 인해서 달라진 모든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 축하해. 주떼야! 지난 한 해 동안 수고 많았어.


나는 사실 새로운 해를 시작할 때 뭔가가 극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야. 보통 1월 1일이 시작되면 불꽃을 터트리고 종을 울리잖아. 카운트다운도 하고. 행사 자체는 좋아하지만 (왜냐면 나는 축제란 축제는 뭐든 좋아하므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하루가 이동하는 것에 큰 감흥을 가져야 하나? 하고 의문점이 생기기도 해. 양력상으로 한 해의 시작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지, 결국 난 늘 순환하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 게다가 ‘력’이라는 개념도, 시간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맞춰놓은 거니까. 한 해, 두 해, 모든 시간은 나를 벗어나 흐른다고 생각하면 1월 1일이 시작되었다고 큰 감흥을 가지는 건 역시 이상해. 나 없이도 흐르는 시간이 내게 무언가 의미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해가 바뀌긴 했지만 12월 31일 23시 59분에서 1월 1일 00시 00분의 사이엔 1분의 간격 밖에 없는 걸. 단 60초!


그래서인지 옛날부터 나는 새해에 무언가 다짐하거나 한 해 동안의 계획을 세우는 일에 무관심했어. 대학에 가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어. 왜냐면 대학은 4달의 학기와 2달의 방학으로 이루어지잖아. 늦여름과 가을, 초겨울을 내내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12월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면 집안의 안락함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으로 생각 없이 바닥에 뭉개게 되지. 12월이든 1월이든 상관 없어지는 거야.


하지만 이번 년도의 나는 29살이야. 남들은 아홉수라 부르는 나이! 어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도 나는 아직도 내가 어른같이 느껴지지가 않네. 31일날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연말 시상식을 보는데 문득 10년 전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라.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의 나는 내가 스물아홉살이 되는 일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지가 너무도 까마득하고 멀게 느껴지는 거 있지. 열아홉살의 나는 2011년이 시작됐을 때 후년에 갈 대학에 대한 압박감만 느꼈을까? 스물아홉살이 될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혹시나 해서 블로그를 뒤져봤는데 2011년의 열아홉살 나는 비스트 팬픽을 썼네. 맞아. 남자 아이돌 그룹 비스트야. 황당하지? 19살의 나는… 공부할 생각이 그렇게 많진 않았구나. 약간 머쓱하고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발견한 김에 수험생인 내가 썼던 팬픽을 한 번 읽어봤어. 어린 나이니 당연히 오글거리고 그 나이치고는 또 잘 쓴 것 같아. 내가 나를 칭찬하는 건 좀 그런가? 하지만 진짜야. 너도 읽어보라고 보여주고 싶지만 오글거려서 이건 나만 볼래. 물론 지금이 소설을 더 잘 쓰긴 해. 그렇게 치면 나도 10년간 발전이 있긴 있었나 봐.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소설 쓰는 실력이 똑 같은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이렇게만 살면 서른 아홉의 나는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같다. 예전의 나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나 봐. 팬픽 말고도 짧은 글을 쓴 게 몇 개 더 있네. 그때의 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의 거리는 어느 정도나 될까? 문득 궁금하다. 10년 동안 유지한 건 확실하게 발견했어. 글 쓰는 것과 덕질. 이 정도도 나름의 성과인 것 같아.


집에 가면 분명 19살 때 쓰던 다이어리가 있을 거라서 그걸 좀 더 찾아봐야겠어. 열아홉살의 나로 떠나는 여행. 히히. 너는 21년을 보내고 있는 소감이 어때? 이런 질문은 1월 초밖에 못하니까 미리 해두는 거란다!



<<사막 모래 속 진주 찾기>>

-주떼


오츠 언니에게.


그간 교환일기를 쓰려고 워드를 켰다 껐다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어. 최근에 일도 슬로우 해지고 뭔가 나사가 한 두어 개 빠진 것처럼 멍한 나날을 보냈어. 과거에 내가 좋아하던 취미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질리도록 해서 그런지 다 흥미를 잃어버렸어. 내가, 이 쇼핑 중독자 주떼가 쇼핑이 지루해 졌다면 믿겠어? 이제 더 이상 갖고 싶은 욕구도 없어. 스토리 중독자가 드라마도, 영화에 대한 흥미도 잃었어. 반강제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기한이 되니 내가 늘어난 테이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씹히고 구겨지고 늘어난 테이프. 요즘 애들은 테이프를 모르려나?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다 보니 즐겨 쓰던 글도 재미가 없어졌어. 글을 쓰지 않은지도 벌써 거의 세 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 그 동안 썼던 일기들은 의욕에 찬 상태로 시작했다가도 힘에 부쳐 끝을 맺지 못하고 처량하게 저장되어 있어. 그런데 일기의 내용이 그 당시의 기분과 상황에 많이 좌지우지가 되어서 그런지 나중에 다시 이어서 쓰려고 하면 감정선이 맞지가 않더라. 그래서 늦어졌어. 미안. 그리고 먼저 시작해줘서 고마워. 사실 매일 플래너에 적혀있는 “교환일기 쓰기”를 보면서 괴로워했는데 언니의 글을 읽으며 약간 감동을 받았어. “속도는 더디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것을 축하하자”는 문장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어. 맞아. 느리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작년 한 해 변동이 참 많고 힘든 일도 많았지. 그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잘 이겨낸 것 같아. 언니도 참 고생 많았어. 2021년이 되면 마치 코로나가 뿅 하고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작년에는 항상 2020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막상 2021년이 되니까 2020 ver.2 를 겪는 느낌이야. 원래는 새해에는 새 다짐을 하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작년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커서 그런지 별로 새 시작 느낌이 나지를 않네. 이번에는 새해가 바뀌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잠이 들었어. 학생 때만 해도 그렇게 보내지 않았거든. 친구들과 종각에서 모여서 밤 새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보내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TV로 보기도 하고,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보내기도 했지.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누릴 수 있던 것을 많이 빼앗긴 것 같아서 안타까워.


하지만 빼앗긴 것만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니까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것을 많이 누리려고 하고 있어. 난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었는데, 요즘은 게으름을 누리고 있어. 게으름을 누린다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최대한 게으르려고 노력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면서 공부가 다시 하고 싶더라. 나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어. 그래서 요즘 프랑스어와 영어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어. 아마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찾은 것 같아. 그래서 감사해.


언니 말대로 20대가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30대가 가까워 지는 지금도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고민하는 것이 대학 입시나 혹은 외모나 연예인에서 돈, 커리어, 집 등 조금 더 현실적인 것에 가까워 진 것이 다른 것 같아. 아마도 철은 조금 들었겠지. 일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그 때부터 내가 내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굳이 또 달라진 점을 찾자면 그 때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야. 2020년과 같은 격변된 시기를 겪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어. 그동안 변화를 겪으며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했어. 상황이 힘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 멈추어서 나를 돌아보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멈춤의 시간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할지 모르는 인생에서 이 시간을 자양분으로 나중을 살아갈 힘을 축척하려고 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번엔 저희가 좀 늦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