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이프1 - 서울, 이곳은

by 킵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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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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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요즘은 기상청 예보가 잘 맞아, 오전부터 비가 쏟아진다. 아주 시원하고 굵은 장마비.

이런 장마를 본 기억이 있다.
그것은 서울에 올라와 본 첫 장마비였다.

대학생이 되면 진짜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믿었다. 남친이나 연애, 꿈, 미래는 지방 소도시가 아니라 서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철썩같이 믿었던 나는 서울 판타지를 잔뜩 안고 상경했다.


서울은 사랑과 모험의 에버랜드같은 곳일거야.

그런데 웬일이야.
입시를 치른 기념으로 처음 '빠마'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이 아줌마 빠마였다)를 한 나는 어떻게 봐도 딱 지방에서 올라운 너훈아였다.

남친은 개뿔, 당장 지하철을 어떻게 타는지도 몰랐던 나는, 아주 간신히 자취방과 학교만을 오고 갔다. 서울대학생들과 과팅을 한 어느 밤, 어찌해서인지 관악 서울대 캠퍼스까지 갔었던 나는, 만리동에 있던 자취방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전해야 했다. 어떻게 서울역까지는 왔는데, 당시 버스만 타고다니던 나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오는 길을 몰랐다.

4호선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뉴스에서만 보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오렌지빛 조명이 가득한 몽환적인 서울역이었다.

그때 기차가 도착했는지 역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좀비물에 나오는 좀비들처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면서 미친듯한 속도로 뛰다시피 걸어가는 풍경. 정말 스펙타클한 광경이었다.

서울역의 밤 9시.
군데군데 노숙자들이 진을 치기 시작한다. 누구도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 장소였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색했던 나는, 최대한 괜찮아보이는 아줌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기요, 만리동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만리동'이 주는 어감 때문이었을까? 아줌마는 마치 자리를 펴고 있는 노숙자를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다...

내가 너훈아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도망칠 정도는 아니자나.... 그 아줌마는 지금 생각해도 진짜 너무했다.

결국 더 묻지 못하고,
도로 교통 표지판을 보고 감으로 집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방향치에 공간감각 없는 나는 한시간이나 걸려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빌라 2층에 있던 집에 터덜터덜 도착해서 든 생각.

'서울이란, 참 피곤한 곳이구나... '

그해 여름에 길고 긴 장마비가 내렸다.
바퀴벌레가 나오던 허술한 그 집은, 창문만은 무척 넓었고 베란다가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첫 해, 할 일도 없이 긴 긴 장마를 보면서
나는 미친 외로움과 우울감과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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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딘가 있을 우울한 지방러가 있다면 힘내세요.
지금은 서울을 좋아합니다. :)
- 킵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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