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킵고잉 Oct 26. 2020

72. 배달 왔습니다~





72. 배달 왔습니다~




본사 임원이었던 쟈넷 (가명)은 드럼을 치기도 했던 쉬크한 미인으로, 남편 역시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의 임원이었던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부자 커플이었다. 함께 일한 기간이 짧아 특별히 기억할만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그녀에 대해 한가지는 기억난다.


당시 우버가 샌프란을 중심으로 초대박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쟈넷은 우버를 연구한다고 우버 드라이버를 했다. 난 그녀를 잘 모르지만, 그 자세만은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



쿠팡이츠를 몇 번 배달해 먹다가, 인터넷에서 음식 배달 후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쟈넷이 떠올랐다. 그래서 음식을 한 번 배달해보기로 했다. 두둥~!

프로세스는 매우 간단했다.
- 쿠팡이츠 파트너 앱을 깔고
- 계좌번호와 내 지역을 설정하면 끝.
- 온라인 배달교육을 받고(그냥 틀어두면 되는 건지 알았는데, 돌발퀴즈 자꾸 나와서 귀찮았다. 중단하려니 지금까지 들은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 들었다)

이제 모든 준비 완료.
파트너 앱에 배달이 가능하다고 상태 업데이트를 해두면, 주문이 들어온다.
주문이 나에게 할당이 되면 큰 알람이 울리는데, 식당정보와 거리 정보, 배달금액이 나오고 ‘수락할지'를 묻는다. 시간이나 주문량에 따라 다른데, 주말은 보통 4천원 정도에서 8천원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어느 주말, 나는 배달을 해보았다.
음식 배달의 핵심과정은 2가지였다. 실제로는 운반과정이 더 중요하겠지만, 초보자에게 가장 큰 허들은 1) 식당에 가서 ‘음식배달하러 왔다'고 말할 때 (살짝 수줍어진다), 2) 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주문자의 현관 앞에 음식을 살포시 놓고, 벨이나 전화로 알려주는 과정, 이 2가지가 핵심이다. 코로나로 비대면 배달이 100%였다.

첫 배달은 양꼬치집.
양고기도, 꼬치도 관심이 없던 나는 늘 다니는 거리에 양꼬치집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심지어 귀여운 양 사진의 거대한 간판과 ‘6년 이하의 어린 양만 사용합니다'라는 잔인한 문구까지 (ㅠ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에서는 나를 보고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매우 큰 소리로 “어서오세용!!❤️"을 외쳤다.

“저.. 쿠팡에서 왔습니다.”
(조금 긴장된다)


식당주인은 의아한 듯,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는 “저기 가져가세요~” 라고 했고, 나는 얼른 양꼬치세트를 들고 나왔다. 매우 잘 아는 동네라서 어렵지 않았지만, 왠지 조금이라도 식기 전에 배달을 해야할 것 같아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배송지에 도착해서 서둘러 나갔더니, 주문자가 나와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인사가 나온다.

“맛있게 드세요~!"

그 후 나는 몇 번 더 배달을 했다.
주말 느즈막히 아점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장칼국수를, 탕수육과 짬뽕과 볶음밥을, 파리크라상의 빵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돈까스와 1인용 메밀국수를, 낙지곱창새우를 배달했다. 대부분 배달 최소 금액 언저리의 주문들이었고, 1인분의 배달도 드물지는 않았다.

배달을 하다보니 점심때를 놓쳐서 늦은 점심을 먹어야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먹을 때,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식당에 들어오는 배달원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총 6건을 배달하고, 38,000원의 수익이 잡혔다.


재미있었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이 은근히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뭐든 먹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음식 배달하고 느껴지는 작은 보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한 종류의 성취감도 생겼다. 신기한 성취감이다.


여러분,
배달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음식 배달이 완료됐을 때는 전화보다는 벨을 눌러달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를 하면 잘 받지 않는데, 음식 배달이 완료됐음에도 받을 때까지 전화를 계속 해야하나 여간 고민되는게 아닙니다. ㅎㅎ 벨은 눌러놓고 가면 되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이상 배달 체험 끝.


-------
더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서 만나보세요. 클릭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eepgoing_yo/

네이버 https://post.naver.com/likeitnow











매거진의 이전글 71. 호모 쇼핑쿠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