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닭띠가 65세 닭띠를 말하다.

- 엄마를 기록하는 변

by 모먼트

약 30년 전, 10살 쯤이던가.

전학을 간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배우고 공유하던 자리에서 주목받고 싶었던 마음인지 어떤지 대뜸 손들어 '어머니'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선명한 것은 다른 친구들은 자꾸 위인을 이야기하는 데 괜한 반발심이 들었던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남들과 다른 답을 하고 싶었던 치기어린 마음 떄문이었는지, 정말 엄마의 어느 지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외치고 싶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위인을 공유하는 시간에 대한 저항감만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 보면 전달 내용 그 자체보다 반발심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우리 어머니는 위인을 제칠만한 서사를 갖고 있는가. 업적이 있는가. 돌아보면 당시 나이의 우리 엄마는 내 나이보다도 어린 나이었다. 성격을 보자면 지금의 60대 엄마 보다는 젊었고 의욕적이었고 선명했다. 그러나 어떤 업적을 이루었다고 볼 만한 나이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학식이 있다거나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거나 하는 요소도 없다. 우리 엄마는 당시 40대 전업주부로 때로 이모와 부수입을 위한 과욋걸리를 도모하고 가정적이지 않은 남편 대신 아이들을 도맡아 키우며 알뜰하게 살림을 살던 평범하디 평범한 57년생 닭띠 여성이었다.


꼬박 24년 차이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건, 휘발되지 않고 내 아이에게 전해줄 지혜를 박제해놓겠다는 의지다.


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어 가는 이 때60대가 된 엄마의 이야기를 주목하게 된 것은 계기가 있다. 마음이 복잡하고 정신이 없을 때 법륜스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낯설지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어보니 엄마가 평소에 수시로 하던 말을 고스란히 법륜스님이 해법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엄마이 생각과 말이 어쩌면 더 알기 직접적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내 삶과 내 아이의 삶에도 연결시켜 지혜로 주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로 부터 재산 보다 지혜와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운 게 가장 큰 유산이라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