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관 매니저의 일기 02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의 모습을 바꿔놓은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처음엔 몇 개월 지나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상황이 점점 길어지더니, 사계절을 돌아 다시 시작되었던 계절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의 시작을 2020년 설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여럿이 모일 수 있었던 때, 친척들끼리 모여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국내로도 들어오고 있다'는 뉴스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은 1월 20일, 설 연휴는 1월 24일~27일)
난 거기에 더해, 영화 <작은 아씨들>을 코로나의 어떤 기점으로 기억하고 있다. 2020년 2월 12일에 국내 개봉한 그레타 거윅 연출의 <작은 아씨들>은 우리 영화관에 오랜만에 매진을 낸 '효자 상품'이었자, 만석을 기록한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준 열기와 그 이후 급격히 식어버린 분위기의 온도 차가 인상 깊었는지, 난 <작은 아씨들> 이후부터 극장 침체기가 시작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일하는 영화관은 3월 관객 수가 2월 대비 50% 이상 감소했으며, 전국 극장 관객 수는 75% 이상으로 더 심하게 감소했다.)
<작은 아씨들>이 개봉한 2월 중순부터 올해 2월까지, 1년을 돌아보면 극장가는 평소와 다른 이상 기후를 맞았던 것 같다. 단지 썰렁해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더워야 할 때 서늘하고 추워야 할 때 따뜻한 느낌이었달까. 성수기와 비수기를 나누는 기준, 즉 인간의 규칙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쓸모해진 듯했다.
으레 극장가 성수기는 여름방학(7~8월), 겨울방학(12~2월), 추석과 설 연휴 등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들이 쉬는 때가 곧 극장 성수기였는데, 코로나 시국에선 그런 정해진 기간에 영화의 흥행을 기댈 수 없게 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코로나 확산 추이. 극장과 배급사들은 사람들이 언제 쉬는지보다도 코로나가 언제 쉴지, 다시 말해 확산세가 언제 잦아들지를 신경써야 했다. 문제는 그게 정해진 것도 아니고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것.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월 확진자 수가 5,000명 이상일 경우 그 다음 달 관객 수가 전월 대비 50% 이하로 감소했다.)
2월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3월부터는 우중충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영화들의 연이은 개봉 연기 소식은 분위기를 더욱 침체시켰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8월이었다. 5~6월 즈음 확산세가 조금 가라앉자 우리 영화관은 조심스럽게 여름 기획전을 준비했다. 방심한 건 아니었고, 바캉스 철에 바캉스를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환기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방역 수칙을 꼼꼼히 체크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기획전을 막 시작한 8월 중순, 갑자기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확산이 재차 시작되었다. 관객이 바글거리길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썰렁하게 진행하게 될 줄이야... 준비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아쉬웠지만, 프로그램이 정말 좋았는데 이를 많은 사람들이 놓쳤다는 생각에 더더 아쉬웠다.
극장가 최고 성수기로 여겨지는 8월은 그래서 예년과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8월 말에 <테넷>이 개봉하며 완전히 우중충한 분위기는 막을 수 있었는데, 이어서 말하자면 코로나 확산 추이와 함께 코로나 시국의 극장 성수기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영화 그 자체가 됐다. 이전엔 성수기는 정해져있고 거기에 영화들이 붙어 편승하는 식이었다면(붙는다고 무조건 흥행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이젠 좋은 영화가 개봉하는 때가 곧 성수기인 셈이 되어버렸다. 연이은 개봉 연기에 영화 자체가 귀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가는 잠시나마 다시 활기를 띠었다.
좀 애매한 지점이 있지만 <테넷>이 그랬고, 그 전엔 5월의 <패왕별희>가 있었고, 겨울엔 3차 확산기가 시작되었음에도 <화양연화>와 <소울>이 든든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관객들을 불러와줬다. (전국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말하면 다른 영화들이 언급되어야 하지만, 우리 영화관 상영작을 기준으로 말했다.) 지금은 <미나리>가 소중한 존재다. 2주차까지 매회 매진을 내고 있다. 물론 매진이 되어도 만석은 아니다. 언제쯤 다시 완전히 꽉 채워진 상영관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성수기 규칙이 어떻게 달라졌든 간에, 이렇게 결과적으로 매출이 나았던 때를 성수기라고 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성수기나 비수기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다시 말하면, 코로나 시국에는 성수기는 없어지고 다른 개별적인 흥행 요인들이 생겨난 셈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