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clear Medicine
운동 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 아침에 무슨 테스트를 받으러 가란다. 병원 관련 용어는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단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낯설어서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렵다. 영어나라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니 대충 눈치로 어림짐작이 될 뿐이지 영어는 영원히 남의 언어다. 특히 공공기관과의 전화 영어는 여전히 나를 쫄보로 만든다. 슬픈 현실이다.
지난번 위 내시경을 받았을 때 위에 음식물이 남아있어서 다른 검사를 의뢰했다고 패밀리 닥터가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었다. 그래서 전화 내용도 그것과 관련된 검사로 대충 이해했다. 간호사가 검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멜로 보내주겠다고 해서 일단 테스트 시간만 다시 확인한 후 통화를 마쳤다.
운동을 마친 후 병원에서 보내온 이멜을 확인하니 내가 받을 테스트 이름이 gastric emptying study라고 적혀 있었다. 스타디? 위를 비우는 공부를 하시겠다고? 듣도 보도 못한 테스트 이름을 구글링을 해보니 다르게 불리는 이름도 많았다.
Other names: gastric emptying tests, gastric emptying scan, gastric emptying scintigraphy, smart pill, wireless motility study, gastric emptying breath test, upper GI series, barium swallow
이 검사를 하는 이유는 gastroparesis(위마비)를 진단하기 위해서란다.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아도 더부룩하면서 통증이 있을 때가 있고 또 어느 날은 찬물을 마신 직후에 윗배가 팽팽해질 때가 있어서 패밀리 닥터를 만났었다. 위암 가족력이 있어서 걱정된다고 하니 위내시경을 받도록 의뢰해 준 것인데 그때 위에 음식물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위내시경 전문의 닥터가 혹시 위 운동이 잘되지 않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gastric emptying study를 받을 수 있도록 의뢰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검사가 예약되어서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을 때 혹시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지 살짝 긴장했었는데 이 검사에 대해 구글링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나쁜 병을 위한 검사는 아니어서 안심이 되었다.
다음은 이 테스트에 관련해서 구글링 한 내용이다
What are they used for? (무엇을 위한 검사?)
Gastric emptying tests are most often used to diagnose gastroparesis.(위마비를 진단하는데 가장 자주 사용된다)
Why do I need a gastric emptying test?(이 검사가 필요한 이유?)
You may need this test if you have symptoms of gastroparesis, which include:(다음과 같은 위마비 증상이 있는 경우 이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Abdominal pain (복통)
Bloating (더부룩, 팽만감)
Nausea and vomiting (메스꺼움과 구토)
A feeling of fullness after just a few bites of food (몇 입 안 먹었는데도 배가 부른 느낌)
Loss of appetite (입맛을 잃음)
Weight loss (체중 감소)
이 중에서 첫 번째 복통과 두 번째 더부룩하고 팽만한 느낌이 종종 나를 불편하게 해서 패밀리 닥터를 만났었는데 그때 의뢰해 준 위 내시경 검사에서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음식물이 위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검사를 받도록 보내진 것이다.
Nuclear medicine is a medical specialty involving the application of radioactive substances in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disease. (핵의학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방사성 물질을 적용하는 의학 전문 분야이다.)
헬스케어분야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누클리어 메디슨은 처음 들어본 검사 종류여서 흥미롭기도 하고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약속 시간 15분 전에 검사실에 도착했다.
테스트를 받기 전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다. 토스트와 계란 흰자 오믈렛에는 추적자(tracer)라고 불리는 소량의 무해한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다. 방사선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 위에서 위장관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몇 시간에 걸쳐 엑스레이를 찍는다. 음식에 섞은 방사선은 음식이 위장을 통해 어떻게 이동하는지 엑스레이를 통해 보여준다. 방사선 전문의는 이렇게 먹은 방사선 추적자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우리가 평소에도 알게 모르게 먹고 있는 방사선도 많을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방사선 물질을 바다에 방류한 후에도 여전히 일본산 음식들을 사 먹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 방사선 넣었어~'라는 빵과 계란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살짝 무섭기까지 헸다. 아무리 소량의 무해한 방사선 물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도 말이다.
보통 우리가 두려움을 갖는 것은 '모르게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알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방사선을 씹으면서도 '진리탐구' 하시는 분 나 말고 어디 또 계십니까?? ^^;;
아무튼 나는 방사선을 삼키면서 알았다. 내가 두려운 것은 '방사선이 몸에 끼치는 해로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사선을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그 방사선을 먹고 난 후 '내 몸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는 말이 맞았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무서운' 음식을 모두 먹었다. 이제 테이블에 누워 위와 위장관 사진을 찍을 차례다. 예쁘게 찍어주시길!^^
테이블이 동그란 기계 안으로 들어가면 위에 있는 사각형 엑스레이 판이 배 위로 내려온다. 가슴 위 2~3cm 정도까지 내려온 엑스레이 안에서 평상시처럼 숨을 쉬면서 약 1분간 있으면 스캐닝 장치는 복부의 영상을 촬영한다.
첫 번째 촬영을 마치면 두 시간 동안은 매 30분마다 영상 촬영을 하고 나머지 두 시간 동안은 1시간마다 촬영을 한다. 그렇게 총 4시간 동안 음식이 위에서 위장관까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를 촬영하는 것이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되면 다시 촬영을 받으러 오면 되는데 그날은 비가 와서 병원 밖에서 걷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병원 라운지에만 있다가 촬영실로 돌아가기를 반복하자니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못 참을 정도의 지루함은 아니었다.
여섯 번째 촬영을 마치고 나니 이미 위에 음식이 남아있지 않아서 마지막 한 시간 후의 촬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듣지 않아도 '위마비 문제는 없겠구나'하고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의 수고로움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캐나다에서 전문의를 만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 일단 몸이 아프면 각자의 패밀리 닥터를 만나야 한다. 패밀리 닥터는 자신이 관리하는 환자의 몸 상태를 전반적으로 살펴준다. 한국의 가정의학과 닥터와 비슷한 개념일 것 같다. (만약 내가 속한 패밀리 닥터가 없으면 가까운 클리닉에 가서 어느 닥터를 만나도 같은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요즘 캐나다에서 패밀리 닥터를 찾기가 힘들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 그리고 패밀리 닥터가 더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각 전문의에게 의뢰를 한다. 패밀리 닥터 오피스에서 직접 전문의 오피스와 연결해서 약속을 잡아주고, 환자는 전문의 오피스에서 약속 시간을 알려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 전문의를 만나 검사를 진행한 후 또 다른 검사가 필요하다면 그 전문의가 추가로 필요한 검사를 직접 의뢰하고 환자의 패밀리 닥터에게는 검사결과와 진행상황을 알린다.
▶패밀리 닥터는 그 결과를 환자에게 알려주고 추후 받을 검사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러니까 나에게 gastric emptying study를 받도록 의뢰를 한 것은 위내시경 닥터였고 그것에 대해 나에게 알려준 것은 패밀리 닥터였던 것이다.)
▶그리고 추가 검사를 받을 시간이 정해지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스케줄을 알려주는 전화를 준다.
캐나다에서는 전문의 닥터를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인식으로 깔려있다. 그래서 꽤 많은 한국사람들은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생겼다는 의심이 들면 한국으로 들어가 진료를 받고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진단을 받고 전문의 닥터와 연결되면 그때부터는 필요한 모든 검사와 치료가 의료복지 시스템 안에서 잘 진행된다.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필요하면 사회복지사까지 한 팀이 되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주고 치료 후 환자의 생활 관리까지 살펴준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니 캐나다에서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일은 없다. (치료과정 중에 필요한 생계비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사회복지사가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준다)
캐나다에서 암 진단을 받았는데도 치료과정이 시작되기까지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진단과 치료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치료과정 중에 받는 모든 서비스에 만족하며 캐다나 의료복지 시스템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나도 스페셜 닥터를 만나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몇몇의 사례들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늦은 진단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의 사연이 가끔 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패밀리 닥터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오는 것을 보면 구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환자의 대기 시간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밤 사이에 이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서 지난 글(https://brunch.co.kr/@ofsyh/6)처럼 메인에 올라간 건가 싶어 찾아보니 이 글이 <여행맛집>에 올려져 있다.
기쁜 마음으로 찾아보다가 크게 실망도 되었고 황당하기도 하다. 이 글이 어떻게 맛집코너에 소개가 된단 말인가? 초보 브런치인으로서 애초에 내 글이 어떻게 메인으로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경우로 확신이 드는 것은 사람이 글을 뽑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설렘과 실망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