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먹빵
에어로빅을 함께 하고 있는 언니들과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타코마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주관했던 언니의 지인이 에어엔비를 운영하고 계시는 곳 근처에 굴 양식장이 있는데 5월 굴 산란기가 시작되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타코마 숙소까지 차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낯선 길은 운전하기가 좀 주저되는데 특히 미국 하이웨이에서 엑시트를 빠져나가는 순간이 많이 헷갈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서 내가 직접 운전하기가 겁이 났다. 가는 차편에 자리가 남으면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마침 한자리 여유가 있어서 동행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하이웨이에서 엑시트로 나가는 길이 헷갈려서 출구 직전에 다시 직진 차선으로 옮겨타야 하는 경우가 두 번 있었다. 구글맵이 보여주는 출구 안내가 명확하지 않아 아쉽다. 이렇게 쉽지 않은 운전이었지만 동행하는 우리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게 해 주시며 2박 3일 내내 운전해 주신 언니에게 감사하다.
타코마로 가는 도중에 시애틀에 들려서 잠깐 구경을 하기로 했다. 도착 시간이 오후 5시가 살짝 넘었는데 상점들이 벌써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래시장을 둘러본 후 맛있는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잠깐 나른해지기로 했던 계획은 접어야 했다.
그래 뭐, 불금이니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도 불금을 즐겨야지,,, 아니, 그래도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데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는다고? 이민생활 22년이 되어도 아직 적응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스타벅스 1호점은 여전히 문전성시였다.
10여 년 전, 긴 줄 끝에 서서 가족과 함께 한 시간 넘게 기다려 구입했던 기념 머그를 회사에 들고 간 첫날에 잃어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랬다. 진짜 가슴이 아팠었다. 그 커피컵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긴 줄 행렬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시간이 아까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며 그때부터 내 마음에 색안경이 한 겹 덮이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또 아팠다.
그날 나보다 더 속상해하던 동료는 컵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프린터에서 뽑더니 회사 곳곳에 붙였다.
<Lost this mug. If you see this mug, please bring it to J.>
이곳을 지나려니 그 기억이 먼저 떠올랐고 그때 도와준 동료의 따뜻한 마음이 다시 느껴져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아팠던 기억보다 따뜻했던 느낌이 더 강하게 살아나는 것이 신기했다.
내 안에 깊이 저장되어 있는 감정은 찰나의 순간에 때맞춰 올라와 그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주 소소한 일도 나의 감정 창고는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올라오는 좋은 감정, 나쁜 감정 모두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공부를 하기 전의 나는 그 감정에 묻혀 제2, 제3의 감정을 재생산해서 꾹꾹 눌러 담았었다. 녹록지 않았던 이민생활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수많은 감정들의 무덤. 그 무덤은 수시로 파헤쳐졌고 그때마다 순식간에 또 다른 감정놀음에 휘둘렸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올라오는 감정이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인식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감정의 무덤을 만들지 않는다. 가슴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채는 순간 그 감정은 활자화되어 내 눈에 보인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알 수 없는 느낌이 아니라 이름 지을 수 있는 감정이 되고, '지금 기쁘구나, 설레는구나, 흥분되었구나, 슬프구나, 짜증이 나는구나, 화가 나는구나, 질투하는구나,,,'라고 그 감정을 인정해 주는 순간 차분해지고 가벼워진다. 이제 나는 마음공부 끝에 받은 선물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가볍고 자유로운 날들이다.
시애틀의 한인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타코마에 도착했다. 숙소의 현관에 서니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와' '어머' '뭐야 뭐야' 등의 감탄 소리를 뱉어냈다. 석양이 지는 고요한 바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바다가 보일 것이라는 설렘이 느껴졌다.
숙소에서 차로 4분 거리에 굴 양식장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굴을 사러 왔다.
풍성한 굴과 조개를 보면서 이번 여행의 메인 테마는 '싱싱한 굴 먹기' 였으니 오늘 아침에 여행 미션을 완료한 것이라며 모두가 하하 호호 신이 났다.
내 머리보다 큰 굴을 들고 계신 저분이 안내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양식장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셨다. '단체로 온 어여쁜 아낙네들이 시골 공기를 오랜만에 활기차게 해 주니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셨나 봐'라며 우리끼리 실없는 농담을 하며 또 하하 호호 웃음을 사방에 뿌렸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의미 없는 말장난, 몸짓도 서로를 웃게 만든다. 내가 친구들과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구입한 굴 중 반은 양식장에서 수고비를 주고 까서 왔고, 나머지 반은 우리가 숙소에서 먹을 때 까려고 했는데 너무 싱싱해서인지 도무지 열리지가 않아 뚜껑이 열릴 정도만큼 살짝 구운 후 먹어야 했다.
준비해 온 초장에도 찍어 먹어봤지만 싱싱한 굴은 그 맛 그대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단맛이 혀끝에 남았다. 이렇게 싱싱한 굴은 처음 먹어봤다. 굴을 좋아하는 한 언니도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 제일이라고 내내 감탄했다.
굴로 배를 채운 후 타코마 올드타운을 갔다. 우리가 잘못 찾아갔는지 아니면 숙소 주인이 말씀하신 것과 우리가 기대한 것이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다고 했는데 우리들 눈에는 그 가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비까지 내려서 더 걷지 않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Feast. 뷔페 레스토랑인데 내돈내산으로 정말 강추할 수 있는 장소다. 우리 모두의 만족도가 엄청나다.
팁 포함해서 약 200불에 5명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특히 나는 '게'로 배를 채웠다. 밴쿠버에서는 비싸서 사 먹을 엄두가 안 나는 '게'로 배를 채우다니! 심지어 마지막에 마신 커피까지 맛있었다. 어떻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화 40불이면 현재 캐나다 달라로 50불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얼마 전에 코퀴틀람에 새로 생긴 한국식 뷔페에서 40불을 내고 먹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곳 음식은 100불을 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점심을 먹었는데 ↑▲ 저녁에 우리는 조개를 넣은 신라면과 남은 굴로 또 배 터지도록 먹었다. ↓▼ 아줌마들끼리 여행가면 생기는 일, 먹고 먹고 또 먹기다. ^^
늦은 시간까지 긴 수다로 여행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날 조개탕과 냉장고를 털어 준비한 아침 식사를 거하게 마친 후 숙소를 떠났다.
밴쿠버로 내려가는 중간에 벨뷰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테슬라 트럭을 전시하고 있길래 테슬라 찐 팬인 남편에게 트럭과 로봇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니 '오오'라는 답장이 왔다. 풋,,,, 나,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왜지? ^^
2021년도에 딸내미가 아빠에게 사 준 테슬라는 남편의 보물 1호가 되어 반짝반짝 윤나는 외관을 유지하도록 수시로 닦아주고 있다. 딸내미가 사준 선물이니 소중히 타야 한단다. 덕분에 나도 언제나 깨끗한 차를 탈 수 있으니 좋아 그런데 남편님, 우리의 작은 차도 가끔 닦아주시면 안 될까? 손잡이에서 녹색 물이 흘러!! (^^;;)
치즈 팩토리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으며 우리들 먹빵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했다.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과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했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할 때는 약간의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살짝살짝 긴장감이 돌기도 했는데 여행의 끝에서는 플랜녀가 무플랜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그냥 가보지 모'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던졌고, 무플랜녀는 플랜녀가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하면서 플랜의 장점도 이해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묻어가면서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를 알았고 서로의 다름을 보완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함께 떠났다가 각자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지는 않은 친구들과의 여행, 우리는 각각의 마음으로 떠났다가 한마음으로 돌아왔으니 다음 여행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 주는 것이다.
-아나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