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놔..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지난 주 브런치에 글을 작성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플랫메이트와 관계에서 저점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야기를 나눴으니 되었다. 내 입장을 어느 정도 공유했으니 괜찮겠다." 등등으로 상황을 좋게 보려고 나름 노력을 해보았죠. 그렇지만 역시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요.
네, 이 친구,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민폐의 빌런이었어요. 꽤나 자주 친구들이 저에게 제가 너무 무르다고 하는 게 있는데요, 바로 저의 웬만하면 참는 또는 웬만하면 오케이라고 하는 습관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참고 오케이를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뭔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리고 제가 생각했을 때 그다지 저에게 큰 어려움이 있지 않다면 웬만하면 오케이. 지금 당장의 옳고 그름이나 계산 보다는, 이 관계를 길게 보는게 제가 선호하는 방식이거든요. 왜 흔히들, 내가 좀 더 한다고 하는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반/반의 느낌이 든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우리는 상대방이 배려해줬던 부분들에 대한 것보다도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잘못한 부분들을 훨씬 더 크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편이죠.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하고보니, 이 말이 맞는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제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인연들 뿐만 아니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들로 생각되어도 제 최선의 배려와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안그러면 저, 굉장히 계산적이고 예민해질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만약 이 모드가 발동되면 아주양 찬바람이 쌩쌩 부는 매우 별로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저의 못난 부분을 잘 알다보니, 여러모로 미리 조심하려고 하는 편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새로운 유형이더군요? 놀라웠습니다. 어제 아주 3연타로 제가 편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실수인지 악의가 섞인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예. 선을 씨게 넘더군요. 꼭 제가 거절 못할 상황을 만들어서, 제가 그 친구 대신 여러가지 일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제 스케줄과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 말이죠. 3연타 중 하나의 경우에는 "다음부터는 이런 경우가 없도록 해달라"라고 이야기를 해야할 정도의 케이스였는데, 자신도 잘못한 건 인지한것 같지만 어찌나 이런저런 화려한 변명을 늘어놓던지, 특히 하다하다 자신의 강아지 탓을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 미안하다고 하지 않더군요. 그냥 자기가 실수한 것인데 제가 예민하게 군다는 뉘앙스의 변명들을 듣고있자니, 퐝당 그 잡채였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대화하고 싶지 않아하더라고요. 평소에는 저를 붙잡고 그렇게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던 그에게 이런 회피성이 있을줄이야..? 그렇군. 이 친구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나와 결이 같은 common sense를 공유하지 않는구나. 무엇보다도 변명을 하면서 '또' 화를 내더라고요?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많은 것인가 그대여. 이쯤되니 답이 나왔어요. 바로 '노답.' 예. 없습니다. 답이.
이 친구의 이런 행동들이 매우 의아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보통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는데, 다들 들으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너무 받더라고요 (미안하다, 들어줘서 고맙고 사랑흔드). 자기도 수많은 WG에 지내봤지만, 역대급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rude, toxic, manipulative 등등 평소 한 대화에 포함되기 쉽지 않은 굵직한 단어들을 한 번에 듣게되는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번 독일 WG는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아오. 근데 이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딱히 좋은 사람이 아닌데, 왜 거절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가? (물론, 일할때에는 조금 달라요. 일할때는요, 거절을 요령껏 잘하지 못하면 아주 큰일 나잖아요. 그쵸?) 그래서 뒤져보았습니다. 유튜브를. 그리고 제 다이어리에 울림이 있던 몇 문장들을 적어놓았어요.
"관계에서는 '안전함'과 '지지'가 중요한 만큼, 내가 이 관계를 더 돈독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으려면, 오히려 내가 하고싶은 말을 더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내 거절이 이 사람과의 단절이 되는 거절이 아니라, 앞으로 이 관계를 잘 가져가기 위한 과정에서의 소통이자 의사표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소통과 의사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장기적으로 가야 될 관계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결국 이 관계를 이어갈지 말지에 대한 결정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뒤따른 질문들: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제한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가 있는가? 내가 최소한의 바운더리와 나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이 친구에 대한 저의 답변은 둘 다 'Nooooooooooooooooo'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그리고 추가로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어요: 충분히 소통하기 위해 일단 나의 최선을 해보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은 'Yes'. 대문자 YES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의 무례와 민폐를 골고루 넘나드는 기이한 행동들을 경험하고, 어제 저녁의 최후통첩과 같은 이벤트를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와우, 나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겠구나. 함께 사는 만큼 내 몫은 하겠다만, 글쎄요. 딱 같은 공간에 사는것뿐인 완벽한 두 타인이 되는게 좋겠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지난번 '친구'가 되고싶다는 그의 말이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이렇게 대하면서 어떻게 나에게 다양한 딥톡을 하는 '좋은' 관계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친구'가 되자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희한하다... 이 세상은 요지경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의 요지경 안에서도 역시 배움이 있긴 했어요. 바로 '거절'과 '명확한 의사 전달'의 중요성,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고찰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편한 사람인가, 이번 기회로 한 번 관찰해보려고 해요. 일이 아주 재밌게 되겠구나야.
물론 이번 케이스가 아주 극단적이긴 했지만, 이미 저에 대해 많이 배우고 느낀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앞으로는 이런 경험은 이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 제 지인의 표현대로 이건 'unnecessary stress',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맞는것 같거든요. 어휴, 솔직히 피곤하고 어이없고 웃기고 막 그렇습니다. 근데 우리들 삶은 아름답고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꽉꽉 채우기에도 모자라잖아요, 그쵸?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공포의 독일 WG 3부작이 완성되었네요. (전혀 계획하지 않았지만, 2부작 부터 실시간 반전..ㅎ)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일에서 WG를 찾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아주아주아주 왕 큰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 모두모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