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산 60일] 10일의 휴가, 모성애 충전하고 컴백

행복했다... (눈물)

by 연유

남편이 열흘의 출산휴가를 받았다. 출산은 내가 했으니 그 휴가는 내 것(?)이라 주장하며, 그로부터 열흘의 휴가를 받았다.


아마 그때부터 기저귀를 갈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던 것 같다. 남편은 하루하루 독박육아의 공포가 카운트다운 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내 마음은 이미 떠났다. 10일을 어떻게 알뜰살뜰 보낼 수 있을까? 한 톨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는 느낌으로 보내고 싶었다. 원래 계획형 인간이라 여행계획도 플랜 B까지 고려하며 짜는데, 이 휴가는 그럴 여력이 없다. 단 하나의 목표만 충족하면 된다.


[나 홀로 이 섬을 떠나자]. 참고로 제주도에 살고 있다. 그렇게 남편과 아들을 놓고 9박 10일 육지로 갔다.


육지 어디?

결혼 전 살았던 서울? 근데 어디서 자지? 호텔에서 9박 10일? 연말이라 너무 비싼데? 서울

겨울엔 강원도지! 근데 거기서 나 혼자 뭐 하지? 강원도

그냥 맘 편히 고향가자. 내 방도 있겠다, 냉장고에 음식도 많겠다. 옷도 있으니 몸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출산모의 휴가를 시작해 본다. 이 휴가는 시작부터 끝나는 게 벌써 아쉬웠다. 어떤 느낌이냐면 때깔 좋은 비빔국수를 앞에 두고 면치기하기 직전, 먹고 싶으면서도 두 세입이면 사라질 게 아쉬운 마음...


1일 차. 육지 도착/ 섬에서 못 먹었던 육지 음식(후토마끼) 배부르게 먹기/ 침대에서 감자칩 먹기/ 밤늦게까지 쇼츠보다 잠들기


2일 차. 아주 상쾌하게 자의로 기상/ 동네 산책/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여유롭게 커피+디저트 타임/ 밤늦게까지 드라마 몰아보다 잠들기


3-6일 차. 엄마와 울릉도+독도 여행

처녀땐 몰랐는데, 원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의미 있었다.


7일 차. 여독 풀며 게으르게 먹고 자고 반복


8일 차. 시내 쇼핑

제주도엔 쇼핑몰이 없어서 온라인으로 주문, 사이즈교환, 반품하느라 귀찮았는데 간만에 시원하게 오프라인 쇼핑했다. 피팅할 때마다 '나 처녀 같아?'라고 물어보는 No처녀...


9일 차. 친구 만나기

제주도엔 친구가 없어서 항상 줌으로 수다 떨었는데 간만에 만났다. 역시 수다는 오프라인이지! 줌은 쫌 감칠맛이 부족했어.


10일 차. 돌아가기

누군가에겐 '아기가 눈에 밟혀서 어떻게 집을 나올 수 있지?' 싶겠지만 나는 아주 자-알 나왔고 솔직히 해방감에 무척 행복했다. 아팠던 손목과 허리도 많이 나아졌다. 오히려 돌아가는 날 '또 언제 나에게 이런 휴가가 올까?' 싶어서 슬펐다.

도대체 모성애란 뭘까? 나의 경우 아기를 낳았다고 생기지 않았다. 두 달 동안 먹이고, 트림 시키고, 똥 치우고, 목욕시키고, 재우고, 집 치우고... 할 일을 해치우는 느낌이었다. 잘 때 살짝 귀엽긴 한데 볼 때마다 '내가 네 엄마야. 사랑해 아가야' 하는 마음은 안 생겼다.

그런데 열흘동안 매일 남편이 보내주는 사진, 영상 속 아기가 상당히 애틋했다.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열흘간 안 봤더니 오히려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고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그리워했던 적이 있던가' 싶어서 모성애가 생긴 것도 같다.


드디어 아기를 만났다. 와우! 나 없는 사이 포동포동 지방인형처럼 살쪘다. 도대체 남편이 분유 몇 통을 깐 거지? 육아 라이프에 빠르게 적응했고 일상은 반복되었다.


새벽 2시... 아이가 깼다... 나는 다시 모성애란 뭘까 생각한다.

다시 내게 휴가가 생긴다면 뭘 할지 상상으로 희망고문하며 그때까지 버텨본다.

찜질방도 가고 싶고 스타벅스에서 신메뉴도 먹고 싶고 뜬금없이 롯데월드도 가고 싶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출산 42일] 잠 못 자는 육아, 현명하게 활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