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산 170일] 지겹고 지칠 때 난 이렇게 버틴다

육아가 체질이 아닌 사람의 생존기록

by 연유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월화수목금토일 할 것 없이 살림하고 육아한다. 매일이 똑같다. 지겹다. 밤마다 오늘도 어찌저찌 버텼단 안도감이 들지만, 곧 내일은 어떻게 보내 할지 막막하다.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기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씻기면 하루가 끝 테지. 그저 별일 없이 사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느껴야 그나마 하루가 무의미하지 않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살림과 육아에 진심인 사람들 참 많다. 그들은 정리도 잘해 요리도 잘해 집도 예뻐, 무엇보다 아기랑 잘 놀아준다. 나에게 살림과 육아는 단지 해야 할 일, 노동인데... 착잡하다. 난 왜 주어진 일을 기쁘게 수행하지 못할까? 아니야, 비교하지 말자 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쪽에 센스 없음을 느낀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모르겠고, 잘해야 한다는 욕심도 크지 않다. 그저 중간만 할 수 있기를.


활짝 웃었던 때가 언제였지? 안면 근육이 굳었다.


안 되겠다. 삶의 재미를 찾자. 살림과 육아에 무능해도 난 유쾌하고 살고 싶다!


[육아가 체질이 아닌 사람의 생존법]


하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

맛있는 음식은 쉽고 즉각적인 도파민이다. 감사하게도 삼시세끼, 하루 세 번 도파민을 만날 기회가 있다.

제주 시골에 사는 나는 도서산간 추가배송료도 마다하지 않고, 유명한 빵집+떡집에서 베스트셀러를 주문한다. 고르는 재미도 있고 택배 기다리는 재미도 있다.

제철음식도 찾아먹는다. 통통한 굴, 기름진 방어... 새로울 게 없는 내 일상에 싱싱함을 준다.


물~론 부작용으로 옆구리 살이 생겼다. 겨울에 붕어빵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양 옆구리에 한 마리씩 말랑한 붕어가 착 달라붙어 있으니.


둘. 인 자유 시간을 갖는다!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토요일에 한 명이 독박육아를 하면 다른 한 명은 온전히 쉰다. 일요일은 반대다.

이건 효과가 확! 실! 하다. 일에 생기가 생긴다. 주말의 잔열로 월, 화를 버티고 다음 주말 계획을 세우며 수, 목, 금요일을 버틴다. 뭐 엄청난 것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카페 가서 글 쓰고 책 읽는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하고, 날이 궂으면 집에서 베이킹을 한다. 그래도 주 1회 몸과 마음이 편한 시간이 보장되어 상당히 행복하다.


셋. 집에서도 외출복을 입는다!

나갈 일이 없으니 24시간 수면 잠옷에 나를 묻었다. 몸은 편한데 컨디션이 늘어졌다.

한 번은 아침에 샤워하고 외출복을 꺼내 입어보았다. 아기가 안겨서 빨 수 있으니 깨끗한 옷을 입었다. 다림질까지 했더니 정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육아라는 노동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수면 잠옷이 주는 아늑함이 배로 느껴졌다. 옷 하나로 육아에 출퇴근이 생긴 느낌이랄까. 그 날부터 종종 집에서도 외출복을 입고 있다.


넷. 작은 성취감을 쌓자!

나는 굳이 스스로 아주 작은 미션을 부여한다. 나에게 도움 되는 것으로. 이를테면 하루에 생수 1.5L 먹기, 아침 식사로 빵 대신 삶은 계란 섭취하기, 영어 단어 5개 외우기, 챗 GTP로 영어 대화 10분하기 등.

하나의 미션을 한달씩 도전해도 좋고, 끈기가 없으면 2주 1주도 좋다. 내 경험상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날수록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운동이 그렇다. 요즘 하체 근육을 키우기 위해 10분짜리 운동 영상을 따라 한다. 하루하루 적금처럼 근육을 채워간다. 엉덩이가 아플수록 오늘도 나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기분이 유쾌하다.


다섯.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자!

유쾌하게 살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체력이 떨어지면 만사에 부정적이고 예민해진다.

체력은 자-알 먹고 자-알 자야 하는데 잘 먹고는 있으니, 잘 자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저녁에 딴짓 안 하고 바로 잔다. 유튜브 보고 싶은데 주말 자유 시간에 보자 하고 꾹 참는다. 잠을 개운하게 자면 다음 날 아이가 울어도 나름 유쾌하게 달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출산 30일] 육아란 삶을 토막 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