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없다. 방금, 나는 있다.
대학교도 끝마쳤겠다, 필자는 정말 여러 고민들로 지새운 날들이 많다. 명확한 목표 없이 허공에 맴도는 아이디어들이나 생각들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다소 옅은 맥락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머릿속을 더욱 난잡하게 난도질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갇혀 무언가를 전혀 해나가지 못하는 모습에, 자신을 하나 둘 깎아내리고는 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지나친 자기애에 기반한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도 혐오하지만,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가로막혀 오히려 보수적인 생각을 견지하게 된다.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면, 지키고 싶어했던 나의 모습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 결과가 정말로 두려웠다. 여태 쌓아온 것은 없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저 가만히 있기에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유였다.
취업을 해야 한다는 말들은 필자에게는 다소 끔찍한 문장이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가고 있는 삶의 기준에 미달한다는, 그리고 뒤쳐진다는 공포감을 다시금 심어두는 촉매제 역할을 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외압에 굴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반발하는 쓸모없는 자존심을 자리잡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취업하자는 이야기는 가진 장점이라고는 생각을 줄글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목표를 설정하는 행동은 다소 상투적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 목표 자체를 세워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그야, 미친듯이 노력해본 기억은 대입 시험을 위한 것이 전부였고, 이후에는 '나만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느정도 꺾여버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부러져버린 나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고, 운 좋게도 필자는 글쓰기라는 하나의 도피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피처다.
그래서 나름의 새해 목표를 세워보고자 한다.
첫 번째 - 나 자신을 버린다
두 번째 - 나의 포지셔닝 방향을 결정한다.
세 번째 - 나의 생각이나 행적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해서 형태로 남긴다.
첫째는 일종의 의식이다.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틀에서 벗어나야 다른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되고 싶다고 했던 작가는 사실 언제든지 포지셔닝 변경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잘 할 수 있으면서도 금전적인 여유를 이룰 수 있고, 미래를 도모할만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계속해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을 교정할 생각이다.
둘째는 방향성과 관련되어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돈을 어느 정도 행복할 수 있을 정도로(물론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모으는 데 초점을 둘 것이냐, 자아 실현을 위해 행동하느냐와 같은 생각들을 확실하게 정리할 것이다. 현재는 지극히 전자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하고 있고, 이는 어떤 업계든간에 일할 수 있는 마인드를 확실히 다지는 것의 초석을 쌓기 위해 필요하다.
셋째는 단순히 모든 생각을 기록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스물 아홉인 현재, 자신의 정체성이나 생각의 틀에 과도하게 몰입한 나머지 타인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을 가하는 경우를 상당수 목격해왔다. 필자는 이러한 행동들이 절대로 옳은 양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사고가 멈춰버린 듯 행동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어쩌면 과거에 묶여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필자는 다행히도 글쓰기를 어떤 상황에서든 조금씩이라도 하려 노력했기에 그나마 덜 묶이지 않았나 싶다.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글쓰기가 전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닌, '그나마' 필자가 글쓰기라도 했기에 스물 두 살 시절에 묶여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별을 따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강한 자아로 무장한 나 자신이 아니라, 무언가를 했던 방금의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믿어야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