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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3. 2020

서로 화해해!

“둘이 화해해.”, “서로 미안하다고 해. 얼른” 어릴 때 동생하고 싸우면 엄마가 늘 했던 말이다. 미안한 마음도 없었고 화해는 더욱 하기 싫었다. 다만 엄마의 재촉에 못 이겨, 안 했다간 떨어질 날벼락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는 미안하다 하고 화해하는 척을 했다. 


친척간에도 종종 말다툼이 있고 때로는 오랫동안 등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 주변에서 화해를 시키려고 노력한다. 이쪽에 가서는 “걔 성격 모르냐? 네가 좀 참고 이해해. 계속 이렇게 지낼 거야?”라고 하고, 다른 쪽에 가서는 또 “걔가 좀 그렇잖아. 맘 넓은 네가 이해해. 서로 좋게 좋게 지내는 게 좋잖아.”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인지 어찌어찌 서로 화해를 하고 다시 만나는 사이가 된다. 다 같이 모이면 주변 사람들이 더 오버를 한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근황도 이야기하고 농담도 던진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리를 만들려 노력한다. 당사자들은 이런 노력에 부담을 느껴서인지 정말 마음이 풀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없었던 일로 하기로 하고 평소처럼 대화를 나눈다. 


이런 일은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회사나 친구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싸운 본인들보다 주변이 더 신경을 쓴다. 부탁받은 것도 아닌데 둘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다. 당사자들은 주변의 이런 노력을 봐서라도 마음을 풀어보려 한다. 마음이 다 풀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 같이 모였을 때는 풀린 척을 한다. 다 풀렸는지 아닌지는 뒤돌아서 하는 말을 들으면 알 수 있다. 내가 니들 봐서 그냥 넘어가는 데 어쩌구 하면 전혀 풀리지 않은 것이다. 주변은 일제히 “알지”라고 하지만 그다지 공감하는 눈치는 아니다.     

 

왜 이렇게 주변이 더 나서서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걸까? 둘 사이가 보기 딱해서? 둘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양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돼서? 아니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런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색한 둘 사이에서 본인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하고 한 번에 만나도 될 걸 두 번에 나눠서 만나야 하고, 서로의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불편한가. 둘이 화해만 하면 이런 불편은 겪지 않아도 되는데. 나라도 화가 났을 일이고 나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일이지만 일단 서로 이해하라고 하고 용서하라고 한다. 나 같으면 평생 안 보겠다고 할 일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냐며 화해를 강요하기도 한다. 당사자들의 속내 따윈 별 관심도 없는 경우도 많다. 때론 너무 많이 들어 이젠 지겹기까지 한 경우도 있다. 그건 알겠고 일단 화해해 란 마음이다.      


'서로 화해해'라는 말은 서로를 위해서 하는 말일까 본인을 위해서 하는 말일까? 본인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크다. 각자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또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보다 화해하라는 말 한마디 던지는 편이 더 쉽고 간단하다. 언뜻 효과도 빠른 듯 보인다. 


'서로 화해해'란 말은 참 이기적인 말이다. 가끔 엄마들은 다툰 아이들의 마음 상태에 상관없이 서로 사과하라고 한다. 심지어는 서로 안아주고 뽀뽀도 하라고 한다. 아이 입장에는 천불이 날 수도 있지만 뽀뽀까지 확인하면 어쨌든 엄마 마음은 편하다. 이건 분명 엄마의 이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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