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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8. 2020

내가 다 해 봤어

‘내가 다 해 봤는데’, ‘내 경험상’이라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하지 말라고 할 때 많이 쓴다. “내가 다 해 봤는데 해도 소용없어”라든가, “내 경험상 그건 100 프로 실패야” 처럼 말이다. 궁금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얼마큼 해 봤는데? 어떻게 해 봤는데? 언제 해 봤는데? 정말 다 해 봤다고? 경험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경험은 아니다. 정도, 방법, 시간에 따라 다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잠깐 해 본 거랑 푹 빠져서 해 본 거는 완전히 다르다. 예전에 해 본 거랑 지금 하는 거는 또 다르다. 심지어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내 주변에는 통신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재밌다. 대한민국 전화선은 죄다 자기가 깔았단다. 전화가 어떻고 인터넷이 어떻고 하면서 우리가 지금 인터넷을 편하게 쓸 수 있는 건 전부 자기들 덕분이라고 한다. 또 핸드폰이나 인터넷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며 뭐든 아는 척을 한다. 심지어는 관심도 없는 '원리'까지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핸드폰 앱은 잘 사용할 줄을 모른다. 그 흔한 SNS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지금의 아이들은 핸드폰 혹은 인터넷 하면 전부 게임이나 SNS를 떠올린다. 누가 전화선을 생각하고 원리를 생각하겠는가. 이런 아이들에게 그들의 경험은 과연 유효할까? 전화선은 깔았을지 몰라도 인터넷을 직접 사용한 경험은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부모나 선생님들은 “내가 먼저 살아보니”란 말을 많이 한다. 먼저 태어났으니 먼저 살아본 건 당연하겠지만 2020년을 아직 안 살아본 건 양쪽 다 마찬가지이다. 1900년대를 살아 본 경험을 가지고 2000년대의 삶을 말할 수 있을까? 살아본 배경 자체가 다르다. 어릴 적 부모님은 보릿고개 얘기를 종종 하셨다. 그러면서 늘 지금은 호강하는 거라고 했다. 와닿지도 않았고 언제적 이야기를 하나 싶기도 했다. 종종 남편은 아이에게 “아빠는 스무 살 넘어서 처음 비행기를 타봤어. 너는 진짜 복 받은 거야”라고 한다. 보릿고개 얘기와 뭐가 다를까. 


아이는 네 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탔다. 16살인 지금 이미 열 군데 조금 못 되는 나라에 가본 경험이 있다. 인터넷은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 스마트폰은 초등학생 때부터 사용했다. 급식은 유치원 때부터 있었다. 나는 스무 살 넘어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고 스마트폰은 서른이 훌쩍 넘어서 처음 사용했고 급식은 먹어본 적도 없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엄마가 경험해 보니”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경험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관계 문제에서나 조금 도움이 될까? 그 외는 일방적인 조언이나 충고보단 같이 고민해 봐야할 문제다.  



특별한 기술이랄 것이 없던 농경시대라면 먼저 해 본 경험은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변화도 빠르고 일의 분야나 삶의 방식도 다양하다. 지금은 오히려 경험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해봤다는 이유로 새로운 걸 배우려 하지 않거나 과거의 경험을 자꾸 현재에 접목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 나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억지로 대입시키려 할 때는 마찰이 일기도 한다. 


내 경험은 내 경험일 뿐이다. 상대방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할 수도 있고, 방법을 달리할 수도 있다. 또 내가 해 본 때랑은 이미 때가 다르다. 내 경험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다. 과거 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치고 현재 잘 사는 사람 많이 못 봤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현재는 현재에 맞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내 경험상’이란 말은 이제 넣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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