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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05. 2020

반복되는 실수는 인품이다

미안하단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여튼 미안해.”, “알았어. 미안해.” 듣다 보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있나 싶다. 이보다 더 어이가 없는 말은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하잖아.”다. 미안하다 했으면 됐지 뭘 자꾸 얘기해, 란 마음이 역력히 드러난다. 미안하긴 하지만 그에 대해 길게 얘기하고 싶어 하진 않는 듯하다. 당연히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종종 늦은 시간에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 대뜸 사는 게 너무 괴롭다느니 요즘 힘들다느니 하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몇 번은 정말 힘든가 보다 하고 받아주었다. 점점 그 빈도가 늘어갔다. 그리고 푸념은 원망으로 바뀌었다. 너는 친구가 돼가지고... 친구가 이렇게 힘들다는데... 밤늦게 전화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던 차였는데 뜬금없는 화풀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 차근차근 어제 한 말은 무슨 뜻에서 한 말이었으며, 어떤 게 섭섭한 건지 따져 물었다. 술에서 깬 친구는 그냥 취해서 한 말이고 별 뜻은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며 미안하다 했다. 어이가 없었다. 전화도 받아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니 제일 만만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자주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여러 번 미안하다 했다. 나중에는 내가 말을 꺼낼 기미가 보이면 먼저 선수를 쳤다. “어제는 미안. 기분 상했다면 사과할게. 다시는 안 그럴게.” 마치 무슨 로봇처럼. 이후로 그 친구와는 거리를 두었다.     


예전 한 상사는 직원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잦았다. 욱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성격 탓이었다. 참다 참다 직원들이 말이 심하신 거 아니냐 하면 내가 좀 심했나, 하며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했다. 몇 번인 가는 수위가 높아 직원들이 회사 측에 호소를 한 적도 있다. 그러면 상사는 경고를 받았고 말을 함부로 한 직원을 따로 불러 사과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조용했다. 그럴 때면 그 상사가 참 작아 보였다. 왜 저럴까 싶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근데 더 한심해 보이는 건 그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거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거는 그만큼 실수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잘못을 하고도 미안하다고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습관처럼 미안하다고 하는 건 고칠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이 마치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줄 안다. 미안하단 한 마디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 생각한다. 행동을 고칠 생각보다 미안하다는 말로 자신의 잘못이 빨리 잊히기를 바란다. 당연히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미안하다는 말도 반복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에게는 세상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엄하디 엄하다는 거다. 자신의 실수에는 ‘미안하다고 했으면 됐지’라며 쉽게 넘어가려 하면서 남이 하는 사과에는 진심이 안 느껴진다, 그게 사과냐,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고 한다. 듣다가 질린다. 미안하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사라진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미안한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은 해야 한다. 그게 진짜 미안한 사람의 태도다. 한두 번의 실수는 실수라 할 수 있지만 반복되는 실수는 인품이다. 미안하단 말도 한두 번은 이해하지만 반복되면 와닿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란 생각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미안하단 말 대신 가능한 미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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