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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1. 2020

마음속 가시를 빼내라

지인 중에 항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성실하고 욕심도 있는 사람이구나 했다. 근데 좀 겪어보니 성실이나 욕심보다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상사의 어떤 요청에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늘 기대보다 더 잘하려 애썼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려 부단히 노력했다. 간혹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면 낙오됐다 생각했다. 심지어는 버려졌다고도 생각하며 크게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또 상사의 마음에 들려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이런 모습은 일에서뿐만 아니라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나타났다. 어떤 모임에서든 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고 분위기가 좀 가라앉는다 싶으면 나서서 오버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이 또한 처음에는 재밌는 걸 좋아하고 지루한 걸 못 견디는 사람인가 보다 했다.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데에서 기쁨을 찾는 듯했다. 여기저기 다니는 모임도 많았다. 마치 관심을 먹고사는 사람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면 의기양양해져 에너지기 넘쳤고 그렇지 못할 때는 외로움과 함께 우울함마저 느끼는 듯했다. 반면에 누군가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면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더 주면 몹시 불안해했다. 어떻게든 관심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 했다. 심지어는 주목받는 사람을 끌어내리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또 다른 지인은 늘 남들과 자신을 비교했다. 남보다 못해 보이면 스스로 강한 열등감을 느꼈고 낫다 싶으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근데 재밌는 건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자신이 지인과 비교당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알게 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도 지인은 혼자서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여기며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도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열심히 살면 좋지 뭐, 란 생각이 있었는데 자신의 성공을 계속 남들에게 증명해 보이려 할 때는 좀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오랫동안 남녀차별에 아주 민감했다. 부모님은 늘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부모님은 아들과 딸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난 늘 그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건 두고 보자는 오기로 변하기도 했고, 때론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이 되면 지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 만큼 절대 만만해 보이지 않으리라는 강한 의지도 있었다. 당연히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고 예민할 대로 예민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를 대하는 데에 부담감을 가졌지만 난 거기서 안정감을 얻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 마이클 A. 싱어는 이와 같이 건드리면 아픈 문제를 ‘마음의 가시’라고 표현했다. 마음의 가시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철벽 방어를 하거나 아예 빼내 버리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의 뿌리를 캐내지 못하고 대신 그 문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결국은 그 문제가 당신의 삶을 지배한다.” 나를 자꾸 건드리는 문제를 꽁꽁 감싸기만 한다면 그 문제는 결국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의 가시는 차별에 관한 것이었고, 내 지인들에게 있어 마음의 가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이었다. 나나 내 지인들은 가시를 없애려는 노력 대신 절대 건드려지지 않도록 철벽 방어를 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철벽 방어가 즉, 무시당하지 않으려, 인정받으려, 비교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어느새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던 거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는 더 이상 차별에 대해 그리 민감하지 않다. 이런저런 고통과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첫째,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하나에 남자 여자를 따지지 않는다. 둘째, 간혹 차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건 그 사람이 부족한 것이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런 생각에 이르고 나서부터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이클 A. 싱어는 우리는 수많은 마음의 가시를 안은 채 살아간다고 했다. 차별에 관한 가시는 빼냈지만 다른 가시는 없는지 마음의 상태를 자주 살펴보려 한다. 왠지 마음이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면 어떤 가시가 박혀있는지 찬찬히 주의 깊게 살펴본다. 그럼 분명 작게나마 어딘가에 가시가 박혀있다. 이젠 가시를 발견하면 밴드로 감싸는 대신 빼내려 노력한다.      


마음의 가시가 많고 깊이 박혀있을수록 삶은 고단하다. 피해야 할 것들도 많고, 반대로 해야 할 것들도 많다. 고통스럽더라도 마음의 가시는 제거해야 한다. 어떤 가시가 박혔는지, 이 가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느 때 나를 찌르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어떻게 빼낼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가시가 많고 오래되면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도 힘들다. 같이 있으면 가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 피로감을 감수하면서까지 곁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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