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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3. 2020

관계보단 자립이 먼저다

요즘은 이런저런 관계들이 쉽게 맺어진다. 강의 하나만 들어도 수강생들끼리 단체 톡방을 만들어 모임을 이어간다. 때로는 강의를 들으려면 단체 톡방에 먼저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지와 소통 면에서 편리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강의가 없더라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단체 톡방이 이용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정보도 나누고 인맥도 쌓는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나 새로운 소식 등을 나누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아침 인사나 일상 잡담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누가 뭘 새로 시작했다거나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하루 종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온다. 이럴 땐 시답지 않은 농담은 덤이다.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있다 하면 또 하루 종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올라온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나보다는 뻔한 멘트도 등장한다. 계속 올라가는 카톡 숫자를 보면 어느 땐 숨이 막힐 것 같다. 근데 분위기상 나도 한마디는 보태야 할 것 같다. 간단한 문구를 보내자니 성의가 없어 보인다. 조금이라도 더 진심을 담아보려(혹은 진심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려) 애쓴다.    


이런 관계는 온라인 상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 동창 모임, 전 직장 모임, 몇 년 전인지 이젠 기억도 안 나는 예전 스터디 모임 등등. 여기서 나누는 얘기는 무한 반복되는 시시콜콜한 옛날 얘기 아니면 자기 자랑뿐이다. 진지한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진지해질라치면 머리 아픈 얘기 말고 즐거운 얘기나 나누자고 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기 자랑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처음엔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다 듣고 나면 자기 자랑이다. 듣다 보면 나도 뭐라도 하나 꺼내놔야 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 만난 거에 비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는 거라곤 어디에 살고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가 전부일 때도 많다.  

    

이런 관계들은 이젠 정리하자 하면서도 쉽게 정리가 안 된다. 끊자니 뭔가 아쉽다. 이런 것도 다 인맥이고, 언젠간 분명 인맥이 필요한 순간이 올 텐데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또 모임에서 나오고 나면 나만 모르는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아 왠지 불안하다. 이렇게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계속 유지하는 애매하고 피로한 관계는 점점 늘어나다. 그야말로 넓고 얕은 관계들이다.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다 뜨끔한 대목이 있었다. “소인의 교제는 까닭 없이 이루어지므로 자립성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되어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척거리며 사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의존共依存’이라고 표현한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까닭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아님 처음에는 분명 까닭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까닭이 수명을 다 한 경우도 있다. 까닭은 이미 사라졌지만 관계는 계속 유지한다. 인맥이라도 이어가자는 마음에서다.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니만큼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내 의사보단 분위기에 맞춰 행동한다. 다 뭘 하자는 분위기면 내키지 않으면서도 따라간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면 나도 덩달아 동의한다. 그러니 지루하고 피곤할 수밖에.      


지루하고 피곤한 관계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의존하고 있다. 좋은 일에 축하는 하면서도 속으론 나도 더 분발해야지 란 생각을 하고, 안된 일엔 위로를 보내지만 내심 그래도 나는 다행이다 라며 위안을 삼는다.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으며 힘을 내 보기도 하고, 잘됐다, 좋겠다는 말에 어깨도 한번 으쓱한다. 그래서 더 못 끊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야마구치 슈의 말처럼 어쩌면 서로 질척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정리하듯 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목적이 다한 관계,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않는 관계는 정리를 하는 편이 좋다. 그저 친목 도모, 인맥 유지를 위한 관계라면 정리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친목이나 인맥의 다른 말은 의존이다. 혼자서는 즐거울 수 없고 스스로 뭔가를 이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관계에 집착한다. 이럴 땐 관계보다는 자립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어야 관계 속에서도 즐거울 수 있고, 스스로 해낼 자신감이 있을 때 필요한 경우에 적절한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도움도 줄 수 있다. 어른의 조건 중 하나는 자립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립이 우선이고 관계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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