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Oct 14. 2020

부탁도 잘 해야 어른이다

나는 부탁을 잘 못하는 편이다. 웬만하면 혼자서 해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도움 한 번 받거나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쉽게 끝났을 일을 몇 배는 더 오래 걸려 끝낸다. 아주 가끔은 일을 그르칠 때도 있다. 보통 혼자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따라 하다 그렇게 되는 경우다. 이런 내게 어떤 이는 너무 자존심이 세서 그런 거라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못한다는 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분명 있다. 아니 크다. 근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서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고 물어보든 도와달라 하든 해야 하지 않나, 란 생각이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부탁을 할 타이밍을 놓친다. 하다 하다 못할 때 부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부탁받은 사람은 오히려 진작 말하지, 라고 한다. 그럼 좀 머쓱해진다. 거기다 내가 몇 시간 동안 끙끙대던 걸 몇 분 내로 끝내기라도 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난 여태까지 뭐 한 건가 싶다. 나도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도와달라는 말이 뭐 그리 어려운 말이고 뭐 그리 못할 말이라고.

이런 나와 정반대인 사람들도 있다. 쉽게 부탁을 한다. 너무나도 쉽게. 가끔은 부럽고 가끔은 좀 이해가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은 이런 경우다. 첫째, 좀 하다 안되면 바로 부탁하는 경우. 나처럼 혼자 끙끙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몇 번은 더 해보고 안된다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땐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해달라는 경우도 있다. 해봤냐고 물으면 난 원래 이런 거 잘 못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누구는 처음부터 잘했나 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언제까지 못할 예정인데 평생? 이란 생각도 함께. 둘째, 어렵고 힘들더라도 본인이 그 과정을 거쳐야 할 일을 부탁하는 경우. 학생 때 숙제나 리포트를 대신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부탁인데, 그땐 철이 없어 그랬다고 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전에 한 번은 회사에서 한 동료가 자기가 맡은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유가 당황스러웠다. 자신도 없고 잘 몰라서라고 했다. 지금 하는 일도 있고 해서 해줄 수는 없고 대신 하다 모르면 물어보라 했다. 바로 알려주겠다고. 근데 그냥 좀 해주면 안 되냐는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거절했다. 본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도 하나의 일로 생각하고 빨리 결과물만 얻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이 해보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어쨌든 했다는 거에 의미를 더 둔다. 보고 있으면 좀 안타깝다. 셋째, 어려워서도, 급해서도 아닌 단지 귀찮아서 부탁하는 경우. 이런 사람이 있냐 하겠지만 있다. 그냥 본인이 움직이기 귀찮아서 남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시간이 없는 척, 다른 급한 일이 있는 척하며 부탁을 하지만 질문 몇 번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 저거 다 핑계구나, 귀찮아서 나한테 부탁하는 거구나. 한두 번은 모른 척하고 해 주지만 그 이상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계속 해주다 보면 부탁도 습관이 된다. 그리고 나중엔 부탁이 지시가 된다.

부탁도 잘 해야 어른이다. 여기서 ‘잘’은 빈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혹은 ‘적절하게’를 뜻한다. 부탁이 필요한 일에는 부탁도 할 줄 알아야 하고, 힘들더라도 스스로 해야 할 일에는 부탁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