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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23. 2020

진짜 어른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예전에 한 상사는 지적을 참 잘했다. 왜 일을 미리미리 안 했냐, 검토를 충분히 했어야지, 근무 시간에는 집중을 해라, 등등. 뭐 하나 틀린 말은 없었지만 뭐 하나 먹히는 말도 없었다. 직원들이 상사보다 더 성실했기 때문이다. 상사는 미리 체크하는 법이 없어도 직원들은 미리 각자 할 일들을 체크했고, 상사는 검토를 게을리 해도 직원들은 그게 불안해 더 검토를 꼼꼼히 했다. 또 상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실수가 잦았지만 직원들은 나름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실수가 나오면 상사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지, 라며 자책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자기는? 자기는 뭐 잘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 보니 평소에도 그 상사가 내리는 지시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상사로서 충분히 할 법한 얘기에도 직원들은 듣기 싫어했다. 그럼 상사는 일부로 더 강한 어투로 때론 겁이라도 주듯이 말했지만 그럴수록 더 반발심만 생겼다. 직원들끼리 모이면 여지없이 “자기부터 잘하라 그래. 자기만 잘하면 되겠네.”라고 했다.



부모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아이에게는 TV 보지 마라 하면서 자신은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사람, 책 좀 봐라,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라면서 정작 자신은 책 한 권을 안 읽는 사람, 게임 좀 그만하라면서 자신은 인터넷 쇼핑이나, 각종 SNS에 빠져 있는 사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면서 집에서 늘 남의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 엄마 아빠한테 잘하라면서 정작 자신은 그렇게 못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애가 말을 안 듣는다며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한다. 누구 닮아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한다. 누굴 닮았을까? 서로 배우자를 탓해보지만 내 모습을 보면 답을 금방 알 수 있다.


나도 아이에게 종종 미리미리 준비를 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외출 시에 늦장을 부리다 막판에 허둥지둥거리면 잔소리를 시작한다. “거봐. 미리 준비를 안 하니까 이러지. 엄마가 뭐라 그랬어?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지?” 근데 말하면서도 참 찔린다. 그게 내 모습이라. 가끔 약속 시간 다 돼서 허둥대는 나를 보고는 아이가 “엄마도 똑같네 뭐.”라고 할 때가 있다. 할 말이 없다. “그니까. 우리 이런 습관 좀 고치자.”라고 뻔뻔스럽게 답한다.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한 말이다. 자신의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살면서 많이 느낀다. 나는 안 하면서 하라고 하는 말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입만 아프지 듣는 이에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설득력만 없으면 다행이다. 잘못하면 위신도 깎이고 신뢰도 잃는다. 



<놀면 뭐하니?>란 TV 프로그램에서 가수 엄정화, 이효리, 화사, 제시가 모여 새로운 걸그룹을 만들었다. 기대되는 조합이어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중 엄정화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아주 오랜만이다. 엄정화는 몇 해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왼쪽 성대의 신경이 마비되어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고 한다. 가수로서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엄정화는 오랜만에 하는 노래라 설레면서도 걱정이 많은 듯 보였다. 이를 눈치챈 유재석은 보컬 선생님을 소개해줬고 엄정화는 눈물까지 쏟아가며 연습을 했다. 드디어 녹음 날이 되었고 엄정화의 표정에는 걱정과 긴장이 가득했다. 목소리는 걱정한 대로 잘 나오지 않았다. 엄정화는 많이 속상해했다. 이때 유재석이 보컬 선생님을 다시 불러 잠깐 연습을 하게 했고, 보컬 선생님은 목소리를 풀어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주었다. 엄정화는 다시 힘을 내 녹음을 시작했고 결국 훌륭히 해냈다.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기뻐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엄정화를 보면서 나 역시도 감탄했다. 맘대로 되지 않는 속상함 때문이라도 짜증 한번 낼만도 하고, 그냥 하는 말이라도 안 될 거 같다는 말도 할 법한데 엄정화는 계속해서 ‘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진짜 해냈다.  


이 모습을 본 후배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엄정화는 후배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가끔 어리고 예쁜 후배들을 보면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하자 다들 그런 생각 절대 하지 말라며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했다. 빈 말의 여지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진심이 느껴졌다. 


엄정화는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도 어떤 지시나 충고나 조언 등은 하지 않았다. 다만 몸으로 직접 보여줬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말보다 몇 배는 강했다.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 이런 게 진짜 어른이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어른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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