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Aug 04. 2021

엄마 난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아이와 함께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보통 아이와 함께 보는 유튜브 영상은 아이가 먼저 보고 같이 보자고 해서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별 내용 없이 웃기거나 재밌거나 신기한 실험 같은 걸 보여주는 영상이다. 아님 귀여운 동물이 나오거나(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키우자는 걸 난 한결같이 단호하게 반대하고 아이는 아쉬움을 영상으로 달래곤 한다.). 

이번에 내게 건넨 영상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화면에는 한가로운 풍경사진 한 장이 전부였고 대신 잔잔한 배경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게 뭔가 싶었는데 댓글을 읽어보란다. 댓글이 온통 자기 성찰이다. 역시 마음이 차분해지면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나 보다. 읽어보니 다 좋은 얘기긴 한데 내게는 그다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자기 성찰을 하고 싶은 순간도 아니었고 별로 가라앉는 기분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나와 달리 아이는 이미 영상과 댓글에 흠뻑 빠져있는 듯했다. 연신 "엄마 이 말 너무 좋지" "이거 읽어봐 봐"라고 했다. 마음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빠르게 읽고 "그러네. 좋은 말이네"라며 대충 아이 분위기에 맞춰줬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것 같다. 갑자기 아이가 말이 없다. 뭘 하나 하고 봤더니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왜?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니 그냥 기분이 그래서" 

"이런 거 보니까 기분이 다운되지. 그만 보자"

영상을 종료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이가 말을 이었다. 

"엄마 난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가면이 맞나 싶기도 했다. 

"무슨 말이야?"

"친구들 앞에서는 일부러 더 강한 척하기도 하고 쿨한 척도 하고 말도 거칠게 하거든. 근데 그건 내 진짜 모습은 아니야. 난 집에 있을 때랑 밖에서 모습이 많이 달라. 근데 엄마 앞에서도 어떤 때는 이게 가면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 이게 진짜 내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그 가면이 아예 내 얼굴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이젠 내 진짜 모습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조금 당황했다. 우선 내가 생각했던 그 가면이 맞아서 당황했고 다음으로는 이 나이에 이렇게 심오할 수가 있나 싶어서였다. 잠시 뭐라고 해줘야 하나 망설였지만 늘 그렇듯 그냥 편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게 가장 아이 마음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각자 다 가면이 있어. 늘 자기 본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주진 않아. 엄마도 그러는데? 밖에서 일할 때 모습하고 집안에서 모습이 다르고 친구들 앞에서랑 우리 Y 앞에서 모습이 또 다르고. 엄마는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 근데 난 좀 심한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엄마는 가면을 썼느냐 안 썼느냐보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면을 썼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아. 엄만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해.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떤 건지 찾아보려는 노력은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이야. 근데 Y는 하고 있잖아. 엄마는 그게 더 대단한 거 같은데."


진짜 그랬다. 어른 중에도 이런 생각 못하는 어른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진짜 모습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진짜 속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가짜 감정에 휩싸여 헤어나올 줄 모르고, 더 나아가서는 그 감정을 주체 못 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아주 많이 봤다. 그런 어른에 비하면 아이는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훨씬 더 성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이런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도 놀라웠다. 혼자 이 감정이 뭐지 라며 고민하거나 나름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정확히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일 텐데. 아이를 보다 보면 종종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때가 그렇다. 내가 나 자신 특히 내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진 나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즉 화가 나면 화에 집중하고 슬프면 슬픔에만 집중했지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근데 아이는 이미 열 일곱 살의 나이에 그걸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다. 내가 아이를 그저 아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이자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배운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엄마인 내게 말해줘서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과 아이 사이가 부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