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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May 21. 2019

건투를 빈다.

‘만약 그때 그 백화점에 취직했더라면, 어쩌면 평생 그 일리노이 시골 마을을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마흔 번째 대통령을 지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자서전 첫 줄이다. 그의 고향 일리노이주의 딕슨(Dixon)이라는 동네는 지금도 인구 만 오천을 겨우 헤아리는 아주 작은 마을. 고교 졸업을 눈 앞에 두었을 즈음, 마을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백화점이 들어온다는 뉴스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흥분하였지만, 이를 누구보다 반겼던 이들은 마침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었던 레이건과 그의 친구들.


그 가운데에도 청년 레이건은 학교 성적이 좋았을 뿐 아니라, 출중한 외모에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로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에서 인명구조원으로 맹활약을 하였던 터이라 누가 보아도 새 백화점 신입직원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아니 그런데 어쩐 일이었을까, 동급생들이 모두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청천벽력처럼 낙방하고 말았던 것이다. 도무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발생했으므로, 청년 레이건의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 쓴 자서전 첫 줄이 이를 회상하고 있었을까!


그랬던 그가 무엇이라 적었는지 다시 읽어 보자. 아뿔싸, 그때 만약 그 직장을 잡았었더라면 시골 마을에 그냥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마음이란다. 그때는 깊디깊은 상처를 안고,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떠나 버렸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90을 넘겨 살아낸 끝에 돌이켜 보니 그 날의 실패와 좌절이 안겨 준 것은 절망의 낭떠러지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과 희망의 사다리였다는 것이 아닌가.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특별히, 이 나라 청년들의 오늘 상태는 어떠한가 묻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는 이제는 고전인가, 이 나라 청년들  열 명 가운데 넷은 ‘이번 생은 망했다’며 늘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뭘 해도 되는 게 없으니, 이젠 아예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다음 생을 기대하겠다’고 하니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미친 세상에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다’ 고 한다. 오죽 힘이 들면 이토록 자조적일까.


하지만, 정신과 의사이며 작가였던 스캇 펙(Scott Peck)은 그의 책 ‘가지않은 길(The Road Less Traveled)’의 첫머리에서 지나칠 만큼 간명하게 적고 있다. ‘삶은 힘들다(Life is difficult.)’ 문장이 놀랍게도 현재형이다.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이 버겁지 않은 이, 나와 보라고 하자. 이제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차라리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가진 상황이 어려운 것 인정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오늘은 만만치 않은 것 또한 받아들이기로 하자. 차라리 그 어떤 상황에라도 묵묵히 최선을 던지며 저 끝에 돌아보는 흐뭇함을 누리기로 하자.


오늘 정치인들 생각 가운데 청년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당신들은 오히려 의연한 젊은이들이 되기로 하자. 정답 없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으로 자조하기보다는, 없는 정답을 만들어 가는 나만의 열정을 불태우기로 하자. 처절한 낙담으로 내려가기보다 불같은 기대로 올라가기로 하자.


어차피 이 나라는 청년들이 살려내야 한다. 어른들이라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걸 보고 있지 않은가. 사회도 바꾸고 경제도 건지며 문화도 일구어 주시라. 젊은 사자들이 포효하는 나라가 한번 되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바로 그 힘든 자리에서 이 나라의 내일을 빚어내시라. 건투를 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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