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수능의 날이 밝았다. 날씨와 상관없이 마음이 추워진다. 해마다 겪으면서도 이날은 새삼 스산하다. 청년들의 내일은 수능보다 훨씬 넓고 깊고 높다. 그럼에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쌓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길 바란다. 실력도 답안지 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후회없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수능과 대학입시. 이거 너무 오래 되지 않았을까.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수능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고 저출산고령화로 인구추이도 바뀌어 학생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는데 수능은 그대로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이며 글로벌한 교육을 생각한다면서 수능은 수십년째 같은 모양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문과와 이과.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 책 제목에도 등장한다. 모방하고 추격하며 겨우겨우 헤쳐왔던 시절에는 그런 구분이 필요했다. 과학과 기술에 능한 인재와 문화와 역사에 집중하는 사람을 길러내어 얼른 우리도 잘 살아야 했다. 사회 각계에 분야마다 권위자들과 실력자들이 있어야 했다. 세월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르다. 공교육이 문과와 이과를 가르는 건 거의 위험하다. 사람을 이과형 또는 문과형으로 길러내면,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문화적 갈등을 깊게할 터이다. 수학적 논리와 과학적 사고를 하면서도 문화와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과학기술의 눈으로만 보면서 역사에 무지한 인간을 길러야 할까. 문화적 상상력만 넘치고 논리적 사고에는 맹탕인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특성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교육이 나서서 차이를 넓힐 필요는 없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태도를 탈피해야 한다.
유네스코(UNESCO)도 교육이 관심가져야 할 덕목으로 네 가지 소양을 설정한다.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 창의(Creativity)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더 이상 홀로 존재하는 사람도 없고 고립되어 존재하는 직업도 없다. 세상은 모두 ‘협력’을 바탕으로 움직이는데 독야청청 뛰어난 실력은 의미가 없다. 대면하여 나누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소통방식이 다양해 졌다. 효과적으로 효율성 높게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연결하는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정답제시를 위한 기억력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새로운 무엇을 쌓으려면 우선 존재하는 것들에서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매사를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덕목을 균형있게 버무려 통합적 사고와 획기적 돌파를 해낼 수 있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승부하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 고작 문과와 이과의 차이를 발견하는 미시적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에도 능하면서 문사철(文史哲)에도 이해가 깊은 통합적 인성을 길러야 한다.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