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그냥 시험이다. 대입을 위한 최소조건을 견주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걸 놓고, 점수발표날이면 온 나라의 언론이 만점자를 찾아 인터뷰를 하고 공부비결과 장래희망을 물으며 촌극을 빚어왔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의과대학에서 배운 의술로 여자친구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의술은 살리는 기술이다. 물론 의술로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윤리가 있고 히포크라테스가 외친 게 아닌가. 선서의 첫머리에 ‘인류를 위한 봉사에 나의 삶을 바친다’고 새긴다. 그런데 나의 삶은 고사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았다는게 말이 되는가. 또, ‘인간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고 생각하겠다’면서 타인의 목숨을 끊은 의술이었다면, 수능만점은 실패한 점수가 아닌가.
의정갈등이 최고조다. 의대입학이 인기만점이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벌기는 하는가 본데, 의사가 되어 지켜야 할 윤리와 품격은 누가 가르치는가. 솜씨좋은 의사를 명의라 한다면, 품성높은 의사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의학교육이 지식과 기술을 정교하게 하도록 매진하면서, 생명을 높이 존중하여 의술을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꼭 의술만 그런 것도 아니다. 경제학을 배워 나라경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정치가가 되어 국민에게 수다한 유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정략에 매몰되어 나라를 가라앉게도 하지 않는가. 모든 지식을 가르치는 길에 윤리와 품성을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하는 까닭이 보이지 않는가.
마침 ‘성년의날’이 다가온다. 5월 셋째 월요일을 기념하는 의미는 이제 성인의 나이가 되었음을 기억할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지녀야 할 책임과 태도를 새겨주려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일에 상관없이 어른이 되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깨우치게 하고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도록 기대함이 아니었을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함께 돌아보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대입현장에서 의과대학의 인기가 치솟는 현실은 윤리와 품성을 잊게 만드는 세태를 떠올리게 하여 씁쓸하다. 자본주의 세상에 돈이 필요하지만, 돈만 따라가는 성공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아닌가 하여 우려가 앞선다. 갓 스무살 청년에게 꿈을 길러주어야 하지만 꿈을 돈으로만 계산하도록 가르친다면 문제가 아닐까.
상상과 창의를 떠올리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대학에 펼쳐진 전공분야의 숫자만 보아도 누군가 열정과 열심을 품고 일으켰을 분야가 수두룩하다. 세상과 이웃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도움의 손길과 관심의 눈길이 필요한 대목이 수두룩하다.
성년의날을 맞은 청년들에게 의학은 물론 그 밖에도 평생을 던져 건져야 할 세상의 굽이굽이가 너무나 많다는 걸 일깨워 주어야 한다. 수능만점이 신기하지만 누구에겐가 가능했을 점수쯤으로 여기는 여유를 가르쳐야 한다. 어렵고 힘든 세상의 온갖 문제를 해결할 넉넉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