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자. 우리는 회의를 하고 있는가. 결정을 앞둔 사안과 주제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 때, 관련 내용과 조건 등을 사려깊게 확인하면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회의가 아닌가.
‘회의’라고 이름붙인 모임에서 그런 과정이 있었는가.별 준비없이 모인 사람들 앞에 누군가 이미 정리하고 결정한 내용을 전달하고 이를 확인하면서 형식적인 최종결정에 이르기만 할 뿐 치열한 숙고와 토론은 보이지 않는 게 우리들의 ‘회의’가 아니었는지. 담론주제에 대하여 개인들이 가진 생각이나 느낌이 없지도 않을 터인데 어째서 우리의 회의 모습은 이렇게 빈약해 진 것일까.
교육환경에서 천천히 생각할 거리와 충분히 즐길 거리를 풍성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문화의 척박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일과 경쟁으로만 내몰아 온 우리 사회의 허점과 패착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제라도 누구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누릴 놀이문화를 길러내야 한다. 누구에게나 탈출구가 필요하다. 누구든 삶의 긴장으로부터 다소간의 해방을 즐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치열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의 악다구니뿐 아니라 공동체의 푸근함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추격과 탈취의 목표만 떠오르는 곳에 여유로운 사색과 문화의 향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견제와 긴장의 차가운 다짐을 풀고 포용과 관용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
경쟁적 이념구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움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돌아보면,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우리 문화에도 숨어있었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었으며 함께 즐기는 놀거리가 우리문화 안에는 풍성하였다.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어째서 사라졌을까. 우리의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까닭모를 열등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 오늘 우리가 선 자리 등에 관하여 더욱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늘보다 따뜻해져야 한다. 다툼과 질시, 경쟁과 추격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포근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기고 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줄다리기와 쥐불놀이, 숨바꼭질과 땅따먹기에는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때로는 다투고 겨룰지언정 언제나 서로를 인정하는 눈길이 숨어있었다. 의식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신자유주의적 긴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당히 맞서며 이기기도 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 즐거운’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 문화적으로 강하려면, 그 문화가 공동체를 지지하는 지평을 품어야 한다.
건강한 지적(知的)훈련이 가능하여 치열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뿌리깊은 지성이 자라날 여유부터 확보해야 한다. 회의를 회의답게 하려면, 비울 공간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