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사를 막 치르고 이제는 우리 집 식구임을 새삼 확인하는 폐백의 자리에서 시부모는 새 며느리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을 던져주며 아들딸 많이 낳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기원한다. 하필 왜 대추와 밤이었을까.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 알의 대추가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 상징되는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고 겪으면서 끝내 이기고 견뎌내어 붉디붉은 빛깔을 선사하듯이, 새색시와 새신랑도 바로 그런 삶을 살아내기를 기원하면서 한 줌 대추를 던져주지 않았을까.
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찾아오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삶을 살아내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의 살아가는 길 위에는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침, 태풍과 천둥과 번개는 주로 여름날에 만나는 손님들이 아닌가. 계절 가운데 여름은 특별히 `만들어 내는` 몇 달이지 않을까. 풍요함을 빚어내는 일을 하느라 여름은 삼라만상에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안겨준다.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 이들을 차라리 지혜롭게 견디고 슬기롭게 이겨내어 보다 나은 결실이 가능하도록 삶을 이어가야 한다.
이 여름, 다가올 장마와 무더위가 우리에게 흐르는 땀과 지친 마음을 가져다주는 일에서 무엇을 깨우칠 것인가. 지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 이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오늘 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청와대가 정부조직 구성과 추경예산 문제로 어려움 투성이다. 정치권이 거짓 선거전의 후폭풍을 만나 수습에 두려움과 걱정이 한가득이다. 관세청과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은 물론 유수한 대표기업들도 부정과 비리로 얼룩졌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가진 문제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갈 것인지 모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추는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며 심신을 젊게 해 준다고 한다. 대추에는 특별한 약성보다는 조화와 영양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런 결과 주변까지 맑고 밝게 하며 따뜻한 화합의 기운마저 보듬어 내라는 의미로 새색시는 대추를 한 아름 받아 들었다.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빼어난 빛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대추나무에 달린 열매에서 관찰도 가능하지 않을까.
청와대와 정치권도, 국가기관들과 재벌기업들도 이 여름이 몰고 온 시련과 어려움으로부터 깨우칠 일이다. 견디고 이겨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국민들은 더 이상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만 듣지 않는다. 당신들의 모습을 어쩌면 당신 자신들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속아줄 어리석은 국민이 이제는 없다.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멍한 시골 노인네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대추 한 알에서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찾아내었던 시인은 같은 시의 마지막 줄을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로 맺고 있다. 과연 세상은 시련과 어려움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가. 그 같은 세상에 살아가도록 던져진 인생은 차라리 복 받은 게 아닐까. 이처럼 아픔과 고난이 가득한 세상을 한 가닥 한 가닥 바꾸어 가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대추를 거두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