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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에 Apr 14. 2021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

무례한 태도로부터 나를 지키기

아줌마, 이거 오늘 언제 해요?

학교 급식소 앞에서 조용히 남은 음식찌꺼기를 쪼고 있던 비둘기가 요동치며 날아갈 정도로 아주 크고 격양되고 무례한 어조로 그녀는 "아줌마~~"라고 말하며 나를 불렀다. "저 아줌마 아닌데요. 그리고 그 일은 저에게 직접 지시하지 마시고  담당 선생님에게 먼저 얘기하시면  저에게 전달이 될 거예요"라고 꼬박 대꾸를 했다. 아니 대꾸라기보다는 굉장히 무례한 그녀의 말투와 업무지시들을 교정해주고 싶어 그렇게 당돌하게 대답을 했다. 이 일은 내가 15년 영어강사와 원장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열정으로 시작한  5년 사업의 일을 중도에 그만두게 됨으로써 코로나 기간에 일자리를 알아보던( Between Jobs ) 중에 잠시 파트타임으로 학교 소독업무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에게 그렇게  무례한 말투와 큰소리로 아줌마라는 단어를 외치며 부당한 업무절차를 내린 그녀는 바로 내년에 퇴임을 앞둔 그 중학교의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하루 종일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라는 감정과 함께 했다. 평소의 평온한 평점심과는 다른 감정, 다른 붉은 기운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아줌마라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아줌마라는 단어를 나도 써본 적이 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들에게 몇 번이고 불렀을 것이고 그 아줌마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이웃의 어느 여인에게 호칭으로 사용했을 터인데  이 격양된 어조의 아줌마라는 단어는 왜 나를 이토록 불쾌하고 당황하게 만들었을까? 붉어진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 그녀는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은  50대, 60대 연령대의 주부들이 하는 일이었다. 40대인 내가 불쑥 용돈 좀 벌어보고자 끼어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 선생님은 내년에 정년퇴임을 한다고 하니 60대 초반의 연령대일 것이다. 나의 어설픈 추측으로 그녀는 주변의 여성분들을 선생님 아니면 아줌마로 나누어서 부르고 있었을 터이다. 그녀의 입장을 계속 생각해보는 것은  확인할 수 없는 답을 유추하는 것이니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왜 그렇게 그녀의  아줌마라는 호칭에 그렇게 화가 난 것일까? 그건 아마 내가 처음 듣게 된 아줌마라는 호칭 때문이었나? 정말 그건 내가 처음 듣게 된 나를 직접적으로 지칭한 인칭 명사였다. 그 나름대로 젊음의 감각과 패션으로 40대 중반까지 함께 해온 나인데, 여기 잠시 용돈이나 벌고 가자고 온 일의 현장에서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굉장히 치욕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의 무례한 태도와 부당한 업무지시 절차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날 저녁 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서 갑질 피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부당한  업무 지시를 요구할 때 갑질 신고를 할 수 있다. 나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다음날 일을 마무리하고 나는 행정실로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당당하게 나의 불쾌한 감정과 그 음악 선생님의 부당한 지시 업무에 대해 하나하나 오목조목 다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진행할 공익신고에 대해 미리 안내를 해 드렸다. 조용한 행정실의 분위기가 나의 미팅으로 더 엄숙하고 조용해졌다. 그런 분위기 이후로 교감선생님의 미팅 제안이 이어졌고 음악 선생님의 형식적인 사과가 이어졌다. 여러 가지 행정적인 절차와 경위서 등 공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복잡함들이 그들에게 이루어져야 했기에 나에게 좀 덮어가 줄 수는 없는지에 대한 포섭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내 방식대로 공익신고를 해서 내 불쾌감과 부당함을  스스로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화가 났던 이유는 격양된 어조와 무례한 태도로 아줌마라고 불린 그 이유가 아니었다. 다음에 이 자리에 와서 그런 무례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다른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더 쓰였던 것이었다. 격양된 어조의 아줌마로 불리어도, 불합당한 업무 지시에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을 그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나? vs 내가 해야 해?

내가 중학교라는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도 내가 당한 불쾌감과 억울함을 법과 제도라는 절차 안에서 나는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 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학교의 선생님으로서  일반인에 대한 무례한 태도와 인성, 어찌 되었건  이슈화된 문제들을 공식적 서류의 흔적들로 남기고 싶지 않은 교직원들의 쉬쉬하는 태도, 그리고 그냥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고 시간만 채워 월급을 받고자 했던 같이 일한 동료, 그 정도의 일은 직장 생활하면서 작은 일이라 생각하고 괜히 일을 크게 만든다고 내가 느낀 인권감수성을 무시한 내 지인, 민간기관에서 그렇게 했다간 자기 직장까지 잘리게 된다는 백화점 비정규직 친구, 세상 살아가다 보면 그냥 주위의 일은 간섭하지 말고 본인 것만 하면 된다는 교회 집사님 등 그냥 변화 없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내가 불쾌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그냥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안에서 느껴지고 울리는 그 불편한 작은 진동의 인권감수성을 밖으로 꺼낼 줄 알고 민주시민으로서 법과 제도라는 절차 안에서 나를 품격 있게 지켜줄 주 아는 이가 성숙된 어른으로 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숙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주위를 돌아보면 참 다양한 직업, 외모, 스타일, 인성 등을 가진 많은 어른들이 있다. 자기 삶을 통해 주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강연가, 자기의 인생 경력을 통해 인생 이모작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자선가,  그동안의 삶의 지혜와 지식들로 제2의 창업을 준비하는 사업가등 이루 다 말하지 못할 다양한 어른들의 삶이 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술 한잔 하시고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는 취객 어른, 친구랑 술 한잔 한 후 욕설을 해가며 도로에 침을 뱉는 어른, 남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개인주의 어른들 등 차마 담지 못할 일반 어른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그런 바르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비꼬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아픔과 방식이 있을 테니깐 말이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은 그냥 나이만 먹고 세월 따라 흘러가 어른이 되어버린 그런 수동적인 어른의 모습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가면서 배워온 배움을 통한 발견들로 주도적으로 세상을 향한 관찰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 내가 해야 할 행동들과 시민의식을 키워가며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내가 살아왔던 시대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데 힘을 보태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성숙된 어른의 모습이다.


나는 어떤 골든 그레이의 모습을 원하나?

골든 그레이(Golden Grey)는 누구일까? 50살 이후 50년의 골든 타임을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50대 이전까지는 살긴 살았지만 실상 산 게 아니었고, 학습과 연습일 뿐인 삶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진짜로 삶을 제대로 살기 시작한 것은 50대가 시작되면서라고 한다. 50대 이후 삶은 정말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학습을 통해 완숙한 경험과 노하우가 가득할 것이며 두뇌는 알파고를 능가(?)할 만큼 많은 인생경로의 알고리즘들이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다해 볼 수 있고 누리고 싶은 것도 다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건강한 몸과 넉넉한 노후 자금과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말이다. 그 나이가 되면  어느 화창한 날이거나 비가 촉촉이 내리는 운치 있는 날에도 회사를 가지 않고 바다든 산이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동안 잘 살아온 인생의 보답을 누릴 수 있는 특혜의 기간이니 말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는 골든 그레이 이의 삶을 그려보고 싶다. 내가 가진 그 모든 골든타임의 자유들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는 않았다고 믿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 말이다. 내가 살아온 길에 함께 해온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들, 음식들, 옷과 패션들, 동물과 식물들, 이웃들, 친구들, 가족들 , 국가와 제도 등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왔다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골든 그레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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