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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에 Apr 14. 2021

40대 후반, 설레는 꿈을 꾼다.

내 삶이 빛이 나도록

설렘을 잃어버리다

10년 정도 연애하던 그 사람이랑 결혼하여 화려한 싱글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지 2년이 되어 간다. 내가 그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결혼, 육아 문제의 이유가 아니었다. 영어교육 쪽으로 10여 년 넘게 해오다가 새로 시작한 뷰티 건강 마케팅 사업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그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열정과 힘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적성과 회사 비전, 가치, 미션 등 많은 것들이 내 천직으로 삶을 만큼 열정을 담아왔었는데 그 일을 내가 놓아버려야 하는 순간이 내게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방향으로만 바라 온 나의 인생의 목표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항상 간직해오던 것, 삶에 대한 설렘, 그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좋아했던 내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무관심으로, 소유에서 무소유로, 바쁨에서 한가로움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설렘에서 무덤덤함으로 나의 시선과 선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겐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한한 쉼이란 시간이 주어졌고 그 쉼을 통해 삶에 대한 예전의 설렘을 찾을 수 있을지 의심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조금이나마  다시  설레길 기대는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절대로 서두르지는 않았다. 제일 필요한 건 흘러가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일자리를 구해보는 건 어때?

최근 들어 우리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공무원이라 안정된 수입과 연금으로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여가를 즐길 여유, 노년의 생활비 보장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 지금처럼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가려고 했다. 심플하지만 크게 아쉬운 것 없는 내 삶에 작은 행복들을 가까운 데서 찾으면서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생각했다.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의 산책, 심플한 식사 준비, 가벼운 집안 살림, 취미를 배울 수 있는 시간, 주말여행, 캠핑 등 평온함 그 자체인 나의 삶의 여유에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내 나이도 지금은 40대 후반이니깐 말이다. 20년 일해 왔으니 할 만큼 했다고 자신을 위안하면서 말이다.


나는 서둘지 않았지만, 남편은 달랐다. 현실적으로 2세의 계획 없이 우리 부부 둘이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는 그리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나는 새로 직장을 구하는 것을 미루고 있었지만, 남편은 내가 일을 계속해서 사회생활을 해나가야 삶이 무료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일을 통해 더 성장하고 삶의 의미를 더 찾아가는 기쁨을 누리길 원한다고 했다. 나는  요동치지  않았다. 지금 이 쉼의 시간이 아주 평화롭고 만족스럽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매일 동네 산책 다니고 민화, 수채화와 같은 미술을 배우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하루에 8시간씩 보기도 하고,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기도 하고, 겨울눈 내리는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뽀드득 밟아보기도 하고, 주말이면 자연으로 캠핑과 여행을 다니는 나의 여유로운 작지만 확실한 행복한 삶에 만족했다.

새로 일을 해야만 할까?

그러나 나만의 심플하고 여유로운 2년이란 시간이 지속수록 나의 내면에서 하루하루 몰래 쌓여왔던 감정, 일상의 답답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작은 행복의 삶을 제대로 못 누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소확행 삶이 누구에게나 행복한 삶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삶을 살아가는데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태도로 나오는 필요한 조건임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나의 삶의 행복 기준은 자신의 인생 무대에서 자신의 잣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 모범 답안 또는 그 시대 트렌드에 나오는 기준에 맞추어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예전에 말했던 삶의 무료함을 느끼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거의 20년 동안 바깥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삶을 즐겨왔었다. 그러나 일주일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서 2년 동안 나에게 연락 오는 사람이 굉장히 드물어졌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면 받아주는 관계들이지만 굳이 친구나 사회관계들 속의 만남을 다시 먼저 만들고 싶지않았다. 그러한 만남 속에 예전의 삶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린 나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은 내가 아닌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간이 오래 지나면 내가 연락하는 사람은 남편, 가족만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사회생활을 할 때 누려 왔던 다양하고 폭넓은 사람들과 만남, 사교의 문화, 자아계발 시간 등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쉼의 기간 동안 무엇보다도 더 기다렸던 것,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의 조용하고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에 갇혀 버린 삶이 아니라 설렘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또다시 탐구해나가는 삶을 다시 내게로 돌려주고 싶어 졌다.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러나 새로 세상을 향해 설레는 마음과는 달리 현실 세계는 냉정하다.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40대 후반이다.  누군가에게는 적은 나이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많은 나이가 될 수 있다. 요즘 직장 채용의 추세가 블라인드 채용으로 가는 추세라 나이, 학력, 성별, 가족관계, 외모 등 편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직무능력을 위주로 평가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는  아직 잘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잘 활용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일단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한창 일할 때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는데 막상 2년이란 공백기를 가지고 일자리를 검색해보니 제일 큰 걸림돌은 나이였다. 막상 40대 후반에서  나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니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 틀이었다. 그래서 여자 나이 40대 후반이라면 직장을 새로 구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직장이란 아무 직장에 들어가고 아무 일이나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성향과 경력을 살릴 수 있고 직장의 명성과 역사도 있어야 한다. 앞으로 50대 이후에도 계속할 수 있는 비전 있고 설레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는 그런 많은 가치를 이룰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꿈은 참 야무지다. 그러나 20년 동안 프리랜서, 비정규직, 개인사업을 해오면서 안정을 추구하고 조직의 틀에 맞추어 일을 해내기보다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추구해왔었다. 이런 나의 경력과 4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입맛에 맞는 직장을 새로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는 않았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vs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새로 직장을 구하는데  아무 직장에나 들어가고는 싶지 않았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젤 우선순위는 역시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였다. 내가 다시 영어 강사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젊고 유능한 교포 강사들이 많은데 내가 경쟁이나 될까? 예전의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때처럼 즐겁고 신나게 만족하며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영어 실력은 무디어져 있는데 다시 예전의 실력으로 올릴 수 있을까? 등 과거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점검을 마친 후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그리고 예전의 내가 했던 자영업이나 사업처럼 내가 가진 자산과 능력, 에너지를 다시 일에 쏟아부어야 한다면 다시 그렇게 열정과 금전을 투자할 수 있는가? 성공적인 결과에 기대를 걸며 또 기나긴 몇 년을 인내하고 보내며 열정 페이를 지불할 수 있는가? 비고정적인 수입에 만족하며 보낼 수 있는가? 성공만을 추구하는 삶이 나에게 가치가 있는가? 등에 대한 점검도 마쳐보았지만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그러면 100세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50대라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간, 40대 후반에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질문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지금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 아니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두 질문으로 좁혀 보았다. 그리고 더 정확히 나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선택했다. 그것은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였다. 그 질문에 대해 진실하고 솔직한 답변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내 인생의 후반을 설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레는 일을 만나다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반복했다. 나를 빛나게 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40년이란 세월을 달려왔는데 그 결과에는 만족하지만 내 삶에 대한 가치부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나라는 삶에 가치 부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 지금도 예전처럼 나의 성공만을 향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건 의미가 있을까? 50대를 바라보는 40대 후반의 나이에는 세상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나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스스로 반복적인 질문을 하고 또 함으로써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을 얻게 되었다. 100세 시대,  인생의 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간, 40대 후반에는 내 주위를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 내가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며, 그들 안에 잠재된 능력과 자질들을 발견하여 끌어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다시 세상을 향한 설렘을 가지게 만든 일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만나게 되었다.

또 다른 설렘을 꿈꾼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40대 후반의 나이에 사회복지 현장 중 내가 원하는 청소년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일에서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추진력은 아직 남아 있어 원하는 곳에 지원하여 10대 1의 면접 경쟁률을 뚫고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쉼의 2년 기간 동안 꾸준히 해온 자원봉사 경험과 40대 후반에 새로 따낸 IT 자격증, 25년 무사고 운전면허로 갱신된 1종 보통면허, 4차 산업 SW메이커(3D 펜, 3D 프린팅, 드론, 코딩, 로봇 지도사) 자격증, 직업적성 상담사, 아동심리 상담사,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을 취득한 것이 청소년 복지 분야의 취업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존의 영어와 관련된 TESOL, TOEIC Speaking, 영어 스토리텔링 지도사 자격증과 영어 티칭 경력 등도 가산점으로 충분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잊고 지내온 내가 살아온 경험과 경력,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들은 면접관들에게 크게 어필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내 전반의 인생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들이 하나도 헛되지 않고 아직 내가 더 설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충분히 밑거름 되고 있어 내 나이 40대 후반의 인생 더욱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줄 것이 기대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며 앞으로 내 삶이 더욱 빛나도록 의미 있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겠다. 오늘 밤도 내일도 난 설레는 꿈을 꾸면서 100년 인생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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