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사춘기? 40대인 나도 사춘기?
사회복지사 1년 차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담당하게 된 분야는 청소년 분야이다. 중학생들의 기초학습을 지도 관리하면서 자원봉사자, 지역 프로그램 등을 연계하면서 청소년들의 보호와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요즘 중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 학교, 기관 등에 따라 차이가 나고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도 없는 게 요즘 청소년 지도 교육 방향이다. 예전 같았으면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매일 공부만 열심히 하기를 강요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성가족부 청소년 육성계획을 들여다보면 지금은 청소년들이 오늘도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는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청소년이 오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정책의 비전과 목표가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은 중1 학생들도 교내 평가를 치지 않으니, 자기 주도적이거나 부모님의 강한 학습관리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중학생들은 공부할 이유도 모르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청소년을 질풍 노동의 시기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해가는 과도기로서의 성격과 미성숙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요즘은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개성 있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학습 시간에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쉬는 시간과 공부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행동을 하여 나무라게 되었다. 너무 과도한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 문란으로 그들을 제지하고 지도하기 위해서 나는 큰소리로 야단을 치며 훈육을 시작했다. 요즘 중학생들은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자기 의사를 스스럼없이 선생님 앞에서 주장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 무례하고 예의 없게 보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학생의 예절 교육을 한다는 명목 하에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어 버렸다.
"너 정말 버릇이 없구나, 부모님이 너에게 그렇게 예절교육 가르쳤니?"라고 큰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이 상황에 집에 계신 부모님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개인의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거나 대화를 할 때 가족의 얘기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은 자제해야 되거나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다. 누가 봐도 잘못된 연결고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뇌리에 스쳐오는 이 안 좋은 감정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시 나에게 후회라는 감정으로 전달되었다. 그 아이랑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 아이에게 상처로 남을까 봐, 미안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말 울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는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아이 인생에 그 말들이 영원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정말 눈물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른이다. 나는 어른인가? 그냥 나이만 먹었을까?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는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면 어떤 모습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일까? 등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40대인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다.
1,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나이 40대에 느끼는 것은 일을 통해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삶을 살아가는 생존법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물론 그 일이 나의 시간과 능력을 투자해 나오는 노동 소득이어도 좋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수입이 계속 창출되는 권리 소득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2. 심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잘 놀고 잘 쉴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 서둘 이유도 없고 그리 바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루 끼니를 맛있게 차려 먹는 여유도 있어야 하고, 식사 후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여유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3. 오감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바깥에 나가서 이름 모를 들꽃 향기도 맡으며 바람의 속삭임을 피부로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구름과 소나무가 보이는 펜션 창가에 맨발을 올려 하늘을 쳐다보며 청포도의 아삭한 식감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황토가 곱게 깔린 둘레길에 맨발로 걸으며 느껴지는 흙의 촉촉함도 느껴보아야 한다.
4. 자아 정체감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자아 정체감을 확립하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뚜렷해져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 자아 정체감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 발견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5. 나를 향한 시선에서 타인을 향한 배려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40대가 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세상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자기만족에만 몰두하고픈 자아 탐닉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그렇게 계속 의미 있는 삶아 살아가고 싶어 진다. 나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부여를 하고 싶은 욕구가 비싼 소유물을 사는 것보다 더 강해진다.
6. 공동체,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노래 한 곡조 하시는 어른,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계속 통화하는 어른, 공원이나 둘레길을 산책하다 보면 먹고 난 음식쓰레기 그대로 의자 밑에 놔두고 가는 어른, 횡단보도 어린이 보호구역에도 주정차 남발하는 어른, 도로에서 조금만 운전을 잘못해도 창문 열고 욕하고 가는 어른 등 차마 어른이라고 부르기 싫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한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성숙한 아니 어쩌면 기본적인 시민 의식을 행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불편한 행동들을 보았을 때 그냥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얘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에 하나하나 참견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공간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되도록 지켜나가야 할 의무를 알려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존경한다. 나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행동을 하는지 나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7. 미래를 생각하는 환경 의식이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 삶을 유지한다 해도 사람은 100년 150년 수명을 살아간다. 그러나 말없이 우리에게 친절한 푸른 나무와 자연들은 500년도 살아가고 1000년도 살아가는 나무들도 있다. 나무는 수많은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에게 그늘을 주고 꿀을 만들어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에게 먹이를 준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 주며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바다는 어떠한가? 다양한 날씨 변화를 통해 지구의 기후를 조절해 주지 않던가! 지구를 지구답게 생명이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산과 바다들을 우리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숨 쉴 수 없는 공기도 만들어놓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지만 미래의 지구에는 다른 사람이 계속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내가 나라는 삶에 가치 부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한다. 지금도 예전처럼 나의 성공만을 향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건 의미가 있을까? 50대를 바라보는 40대 나이에는 세상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나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들이 떠오른다. 반복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100세 시대 인생의 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간, 40대에는 내 주위를 돌아보고 내가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며 그들 안에 잠재된 능력과 자질들을 발견하여 끌어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졌다.
나는 아직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에 어떤 의미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한다. 내가 누구인지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하지 않고서는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시간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계속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살아있는 감정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 삶은 아름답게 성숙하게 무르익어야 하니깐 말이다.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가 되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었으며 나름대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고 후회도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의 삶에 대한 스스로 만족감, 자아통합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이 후회 투성이고 잘못 살았다고 느껴지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기분만이 가득하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정말 깊은 절망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런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