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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에 Nov 25. 2022

72번째 생일을 축하해. 엄마

새로운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하길

작년 12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11월 말일인 내일은 엄마 생신이다. 아버지가 19여 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다시 재활과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해갈 즈음 5년이 지난 후 심근경색으로 다시 쓰러지셨다. 재활의지가 너무 강하셨는지   운동이 너무 과하셨는지 심장에 무리가 온 것 같으셨다. 그렇게 다시 쓰러지신 후 다리를 움직이고 걷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셨다. 집에서 지내시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시고 밖에 외출하는 것을 많이 꺼려하셨다. 그렇게 외부 세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한편으로 다행인 건 아버지가 동생이랑 엄마랑은 사이가 더 돈독해졌었다. 집에서 매일 얼굴 보고 매일 밥을 같이 먹고  매일 같이 병원이나 나들이도 같이 하고 시장도 같이 다녀오고 매일 같이 잠을 자고 그렇게 함께 붙어서 옹기종기 는 시간이 많고도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르면 아버지는 언제나 항상 웃는 얼굴로 함박웃음 지으며 박수도 치며 맞이해주셨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맛있는 집밥도 같이 먹고 소소하게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한 자리가 덩그러니 비어있다. 불러도 다시 찾아봐도 절대 다시 이  텅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그것. 그것은 죽음이란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말로만 듣던 '죽음'의 의미를 몸소리치 느끼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절대 손잡을 수 없는 것, 절대 만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것을 주고도 많은 것을 노력해도 절대 절대 닿을 수 없는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그게 죽음이란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50년이란 세월을 부부로 지내오셨다. 20살 풋풋한 숙녀가 25세 어엿한 청년을 만나 그렇게 자식 셋 낳고 아이들 밥굼기랴 기죽을라 노심초사하면서 장사하면서 키워온 시간이 그렇게 반백년을 지나온 것이었다. 근데 그녀 곁에는 이제 그 든든하고 인물 좋은 남자가 없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얼마나 마음이 허한 지 얼마나 외로운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녀는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질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보인다.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내일은 그녀 생신이다. 그녀가 생일 아침에는 뽀송뽀송한 하얀 침구에서 화려한 도시와 호수 뷰를 보고 눈을 떴으면 좋겠다. 그동안 본인의 생일 미역국도 집에서 스스로 끓여 먹은 그녀가 뷰가 끝내주는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하고 72번째 생일은 Rooftop Infinity 온천풀도 있는 화려한 특급호텔에서  세상의 호화스러움도 만끽했으면 좋겠다. 모스카토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의 청량함도 맛보며 즐길 수 있는 그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풀에서 나체로 뜨근한 시간도 보냈으면 좋겠다. 50년의 그 빈자리가 딸내미의 특급호텔 숙박 이벤트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일 생일 아침은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당신의 손도 잡을 수 없고, 당신에게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날이 오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엄마! 72번째 생일을 진싱으로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그동안 너무 잘 키워져서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며 두 손 꼭 아주 꼬옥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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