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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Nov 02. 2024

그녀

▶생(生)의 규칙

그녀는 말주변이 없다. 머릿속에는 유창한 사람 하나는 있는 것 같은데 말로 표현하려면 어눌하고 실수투성이다. 무수한 말들의 생각이 엉뚱하게 튀어나오는 그녀. 그녀는 그게 늘 의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널린 생각들을 나열하듯 글을 써보았다. 하지만 그 글은 그저 하소연에 불과했다. 이에 실망한 그녀는 자신의 글을 쓰고 지우다 결국은 삭제해 버렸다.


그녀는 하루 종일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지 터져버릴 듯해서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 어지러울 때는 가슴까지 쿵쾅거리기까지 했다. 왜 가슴이 이렇게 뛸까? 심장이 문제 있는 걸까?


그녀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이성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인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걸 차츰 알아간다. 결국은 머릿속의 생각은 감정적인 것이 90% 차지한다. 그 90% 속의 생각에는 후회, 분노, 절망감이 가득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분노를 밖으로 뱉어내려 하니 말이 어눌해지고 표현이 엉망진창이 된 거였다. 그 분노를 논리 정연하게 말하기에는 너무 과거의 일이고 어느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는지 불명확한 장면들만 가득해서 상대방은 벌써 잊히고 버려진 오물 같은 것이었다.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상처는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한데 사람들은 왜 잊어버리는 걸까? 그들이 그녀에게 상처 준 것을 잊었다니 원통한 일이다. 그녀는 왜 그때 따지지 못했는지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그녀는 다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타인의 글도 읽어보고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커다랗게 자리 잡은 흉터를 도려내기 위해 남 탓으로 돌리고 화풀이하며 살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머릿속의 그들에게 벌을 줘야 화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그녀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머릿속이 더 난잡해지고 지저분해졌다. 몸은 항상 들떠있고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뾰족한 가시들은 그녀를 공격하고 있었다. 예뻤던, 화사했던 원래의 얼굴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픽사베이



그녀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녀를 위로해 주고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그녀의 들떠있는 몸이 차분해지고 주변의 공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글도 읽었다. 서서히 그녀는 그들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상처는 몇백 배의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상처였다. 그들은 그 상처를 이겨내고 그녀와 같은 이들을 위로해 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하루 종일 울면서 조금씩 머릿속을 비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에 담긴 언어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 속에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행간에는 많은 상처가 있었고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우울한 기호가 표시되었다. 마침내 그 우울한 기호를 찾아내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녀는 또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우울한 기호들을 시원하게 풀어야 할 날이 올 테지만 지금은 두렵기만 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의 절망감을 아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마음에 있는 찌꺼기들을 버릴 수 있었고 머릿속이 조금씩 이성적으로 바뀌고 글도 제대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이 더 이상 분노의 생각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의 생각이 넘쳐날 때까지 그녀는 글을 쓸 거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시원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올 때를 상상하며 자신의 중심을 똑바로 세우기로 했다.



픽사베이. 가슴 펴고 웃을 날을 기대합니다.





생(生)의 규칙 / 헤르만 헤세

살면서 생기는 고통과 어려움, 괴로움을 해결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코 타인이 해결해 줄 수 없다.

이게 우리 앞에 놓인 생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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