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시집_상실의 시간_ E. 회고록

터널의 끝,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남기고

by oh오마주


조간 시집 '상실의 시간'을 회고하는 기록입니다.


총 20개의 본 산문시의 완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물', 듣는 것만으로도 찬란한 단어입니다. 쓰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시인이 잘 쓴 시를 참 너무도 쉽게 읽어온 것을 반성했습니다. 완성하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첫째로, 시간이 꽤 많이 듭니다. 하나의 시를 쓰기 위해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 혹은 하루 왠종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이어지는 오색빛의 표현들로 생산하기 위해 감정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너무 높고, 어느 날은 '알겠는데 설명을 못하는'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 모여 스물입니다.

9월 11일부터 달력을 넘겨보니, 9월은 외로이 '추분'이 있고, 10월은 국군의 날, 개천절, 추석, 대체공휴일-한로, 한글날까지 많이도 기록되어 있네요. 그리고 마침내 '그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Bye'라고 썼습니다. 슬프기로 한 날, 괴롭기로 한 날, 상처를 도려내기로 한 날, 이쯤 했으면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시로 시작하는 아침은 고통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분명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지옥이나 구렁텅이쯤이라 생각했습니다. '괴롭다. 왜 괴로운지 몰라서 더 괴롭다.' 생각을 곱씹고 되짚고 회오리쳤습니다.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쓰고 나니 알겠습니다. '나는 남기지 못해 병이 났다'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지극히 소소하게 누리는 행복에 만족하지 못해, 행복의 늪에서 아등바등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놈의 '발전'과 '격파'가 뭔지 모르는 게 가장 불행한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어둡고 칙칙한 시를 써 내려가며 가장 좋았던 건 그 어떤 추상적인 단어보다 현실적이라는 점입니다. 내 현실이 칙칙하다는 생각에 더욱 깊은 슬픔이 잦았지만, 사실은 말입니다. 저는 '변화'를 '변질'이라고 하고, '평화'를 '나약'이라고 읽기도 했습니다. 굴절되는 빛들과 왜곡된 소리들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걸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웅얼거리는 세상의 소리처럼 답답하게만 느끼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말이죠, 발 가장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고 나면 덜 무섭습니다. 전부 설명되기만 하면 조금 쉬운 인생이 됩니다. 이제 제법 굵고 진한 마음들이 빠져나갔으니 무채색의 날들을 새롭게 기록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건져내 채반에 걸렀습니다. 아직 남은 이슬은 햇살만 가득하다면, 보석같이 빛날 겁니다.


예술은 가장 고차원적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라 하더라고요. 나 스스로에게만은 솔직하자, 했던 제가 쓴 글들은 예술이 될까요? 가끔은 제 솔직함이 예쁜 피부가 아닌 살갗 아래 같아서 문학외(外) 글 같습니다. 결과가 없을지도 모를 '시간 낭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들은 온전히 저고, 제 문학입니다.


터널의 끝,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남기고ㅡ 알알히 과정 속에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진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며, 제게 남아서 영롱하게 비치고 있는 것들만 고맙게 간직하려 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 빛이 전해지길 바라며 끝까지 쓰려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 10월 13일, 마지막 시 '상실의 시간'으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족한 제 시를 꾸준히 읽어주시고, 하트까지도 보내주신 분들의 이름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무한한 감사와 무사안녕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oh오마주 올림

이전 20화조간 시집_상실의 시간_ 19. 죽은 시인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