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단지 무거워서, 내가 가끔 아파

반복되는 패턴, 부부의 싸움

by 숨틈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려 하다 나도 모르게 뭔가를 걷어찼다. 아령이었다. 뜬금없이 아이 방에 남편의 아령이 있었다. 발이 불에 타는 듯이 아팠다. 주저앉아 발을 부여잡고 기도하듯 고개를 숙였고, 아픔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다가 새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령은 그저 놓여있는 것뿐이었다. 다른 장난감들과 놓여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이것은 아픈가. 날카롭게 무언가를 겨누지 않더라도 무겁게 놓여있는 자체로도 아픔을 줄 수 있으려나.

남편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 생각 속에는 가벼운 상상부터 어떠한 현상의 본질에 대한 고민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재잘재잘 서로 잘 말하다가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때가 있다. “뭐 해?”라고 물으면 한참 있다가 “어 그냥 생각 중이야”라고 한다. 남편의 생각은 모래알 같이 공간을 날아다니는 듯하다가도, 침묵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모래 같은 생각들로 만들어진 모래주머니를 그는 옷 마냥 조용히 짊어지고 산다. 하지만 나는 공기에 스며든 무게감에 가슴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남편은 고집도 강한 편이고, 뭔가를 인정하거나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좋다, 싫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하는 데에도 진중하다. 정말 좋은가? 정말 미안한가?를 고민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려 한다. 남편의 그런 속생각을 들으면, 그걸 왜 고민한담, 하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리게 된다.

말들을 생각의 필터로 거르고 거른 후 내게 오게 되는 건 말 몇 조각. 적은 퍼즐로 남편의 속내를 추측하는 덴 이제 선수가 되었다. 남편의 표현들은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마음보다는 은은한 숯불에 가깝겠다. 평소엔 충분히 따뜻하나 마음이 겨울일 땐 아쉽기 짝이 없다.

오랜만에 남편과 다퉜다. 남편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이후 남편에게 사과도 받았는데 나는 기분이 도통 풀리지 않는다. 왜일까? 미안하다는 말이 과도하게 담백해서였을까, 그 이후의 아무렇지 않음 때문이었을까. 큰 잘못도 아니었고 사소한 말 한마디였는데. 사과에도 요지부동,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집안의 냉랭한 공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내가 마음을 풀지 않아서 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내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분노 가운데 남편의 ‘미안해‘가 가슴에 죄책감으로 박혀 이틀이 흘렀다.


남편은 싸운 후에도 이틀 동안 별일 없었단 듯이 행동했다. 하지만 집에 웃음소리는 적어졌다. 처음 끓어오르던 화는 누그러졌는데, 내 기분이 상하는 것이 남편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다시 화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미안하면 다인가. 담백하다 못해 퍽퍽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함께 부대끼고 사부대며 정을 확인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남편에게 거슬리고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이럴 때면 나의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운 것같이 느껴진다. 결혼한 지 9년 차인데, 한 번씩 내가 그에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일까 봐 불쑥불쑥 불안이 몰려온다.

남편은 이틀째에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내게 마음이 안 좋은 거야?” 그 한 마디에 입꼬리 쪽 속근육이 히죽이 반응하는 걸 느끼며, 내게 내 속마음을 들켜 머쓱한 기분이었다. 입꼬리를 숨기려 애쓰며 말했다. “내 기분이 네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속상했어. 여보의 무거움은 가끔 서운해”

알고 있다. 걷어 차인 아령도 억울하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라 내게 더욱 무겁다는 것을 알까. 무거운 그대를 걷어 차고 불타는 듯 아픈 마음을 부여잡는 것이, 사랑하고 기대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픈 내 마음과 억울한 네 마음이 왜 이렇게 진행되었는지 펼쳐두고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아주 쉬운 문제다. 너는 내게 좀 더 다정하면 될 것이고, 나는 너의 담백한 말 그대로를 곡해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것이 아니겠지. 애정이든, 행복이든, 다툼까지도.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사이의 톱니바퀴 하나하나 들이 약속한 듯 돌아가는, 그냥 단순히 사랑의 작동원리임을 이제는 안다.

왜 이제야 말을 건 거냐는 물음에 남편은 말했다. “난 당신이 마음이 잘 정리되기를 기다렸어” 나 딴엔 거리감이 느껴져서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었는데, 또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은 나쁜데 엄마 말이 다 맞아서 그냥 심통 부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된다.

싸웠던 그 순간에 내가 힘들고 약해져 있어서 별 것 아닌 말에 상처받았음을 알기에, 남편도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기에. 너 무겁다고, 걷어차서 내 발 너무 아프다고 한 번 투덜거리니 남편이 웃기다며 고개를 젖혀 하하 웃어 보였다.

지긋지긋한 패턴. 하지만 어찌할 바 없다. 강도가 약해질 뿐, 평생 가야 하는 패턴. 우리가 사랑한다면 반드시 세트로 가져가야 하는 부작용. 사랑의 역동 속에 있다는 진한 증거.

또 우리는 이렇게 똑같이 싸우고, 비슷한 마음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관계의 조미료라고 생각해야지. 조금만 들어가야 맛이 확 사는 땡초같은. 반드시, 조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