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서야 고마워
“엄마 때문이야. 엄마 미워!” 네 살짜리 딸이 장난감 놀이를 하다가 나의 작은 실수에 소리친다. 고작 네 살인 어린아이가 툭 하고 뱉는 말이었다. 상황을 적당히 판단하지 못하고 분에 못 이겨 던지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미움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고 저녁 식사를 차린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덤벙덤벙 썰어진 고기를 넣고 갖은양념을 넣어 두루치기를 만든다. 매콤하고 달큰한 향이 코끝을 때린다. 스트레스에는 고기와 매콤한 양념이 필수다.
두루치기는 과거에 아빠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와 살았다. 일그러진 얼굴, 짜증스러운 말투, 바쁜 발걸음. 내 사춘기 때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그랬다. 거친 언행과 행동에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알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 같았다.
엄마가 밉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나의 딸은, 엄마가 주는 밥과 간식을 배부르게 먹고 입과 손의 흔적을 엄마의 도움을 받아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무언가를 요구해왔다. 간식을 달라, 높은 곳의 장난감을 꺼내 달라, 흘린 것을 닦아달라. 짜증 섞인 고함으로 요구했다. 이것 모두 다 해주지 않으면 모두 엄마에게 잘못이 있는 양.
아빠는 돈을 많이 벌어 떠난 엄마에게 복수하겠다고 공장을 차렸다. 그 공장은 간신히 빚지는 것만 면하고 있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자식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일을 쉴 수 없었다. 아빠는 항상 몸과 마음이 고단했다. 밤에는 술과 수면제를 먹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매일을 보냈다. 밤에 술을 마시며 힘든 얼굴로 앉아있는 아빠를 보면 위태로웠지만, 아침 해가 뜨면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톱니바퀴처럼 빡빡하게 돌아갔다. 아침이 되면 나는 아빠에게 이것저것 요구했다. 참고서 살 돈을 달라, 친구들과 놀러 다녀 올테니 용돈을 달라, 내게 말 걸지 말아 달라. 그러고 밤이 되면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에 아빠 탓이라며 고함을 질렀고 아빠의 얼굴에 더 주름을 쌓았다.
그렇게 싸운 저녁이 지나고도 아침이 되면 언제나 낡은 가스레인지 위에는 아버지의 요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성장기인 자식들의 밥을 챙기기 위해 큰 프라이팬에 고기 요리를 잔뜩 해두곤 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일어나면 아버지의 요리를 하는 등이 보였다. 돼지고기를 대충 팬에 집어넣고 간장도 대충, 고추장도 대충, 물엿도 대충. 투박한 손으로 팍팍 넣은 재료들을 휘휘 저으면 아빠의 두루치기가 탄생한다.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멀리 지어진 공장으로 출근한다.
요리를 할 때에도 아빠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따뜻한 요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끼도 굶기지 않았다. 저렴한 고기로 요리를 했음에도, 아빠의 요리는 손맛이 있어 감칠맛과 애정이 느껴졌다. 거친 과정이라도 따뜻한 결과물이었다. 아빠의 음식을 먹는 순간에는 집이 좀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만든 두루치기를 먹으며 몸과 마음을 찌웠다. 척박한 상황에서 일군 모든 것을 묵묵히 자식에게 주었고, 우리는 장마철 고사리처럼 멋모르고 잘도 자랐다.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기고만장했던 철없는 사춘기 딸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아빠의 굳은살 가득한 손 덕에 그 시절을 버텨냈음을.
나는 한참을 아빠에게 요구하고, 좌절하고, 미워했다. 아빠의 잘못은 없고, 그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왜 그때는 알지 몰랐을까. 방향도 모르는 서러운 마음을 터뜨릴 곳이 필요했던 걸까, 아마 그랬던 거겠지. 아빠는 그 시기 한 명분 이상의 일을 해내며 버텼다. 철없던 나는 부드러움을 요구하며 아빠를 탓했지만, 아빠의 거칠함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살아남았을 수 있을까? 아빠의 모든 몸짓이 생존이었고, 사랑이었다.
지금도 아빠 집에 갈 때면 아빠의 손맛이 그리워 두루치기를 먹고 싶다는 말을 슬쩍 꺼낸다. 그러면 무뚝뚝한 얼굴 뒤에 약간의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는 큰 프라이팬을 꺼내든다. 그러고는 거친 손으로 투박하게 돼지고기를 대충, 간장, 고추장, 물엿도 대충 넣고, 휘휘 저으면 아빠의 요리가 탄생한다. 아빠의 요리하는 뒷모습이 좋고, 아빠의 요리가 맛있다고 말하는 순간이 좋다. 그걸 들으며 웃는 아빠의 얼굴도 좋다. 아빠의 두루치기 덕분에, 치열하고 미운 사춘기 시절의 나도 분명히 사랑받았음을 다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