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많은 것도 화가 나

등원 전쟁과 분노

by 숨틈

오전 8시 55분, 남편이 말한다


“아, 나 화장실”


암묵적으로 약속된 등원시간은 오전 9시. 그때 아이 둘을 등원시켜야 30분 정도 정리를 한 후에 내 일들을 할 수 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고군분투해서 준비를 마무리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옷 입자”는 내 말은 공중으로 분해되어 버리고, 다섯 살짜리 딸은 책을 꺼낸다. 딸의 움직임이 슬로모션으로 보일 지경이다. 책을 꺼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분노가 다섯 번은 치밀어 올랐다.


내게는 시간이 정말 부족한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알차게 논다. 신명 나는 가위질에 짤막한 종이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고, 누나의 색연필을 꺼내어 의기양양하게 걷던 14개월짜리 아기는 온 바닥에 색연필을 흩뿌려두었다. 식탁 위, 싱크대, 주방, 침실, 꼼꼼히도 어질러놓았다.


어젯밤까지 작업을 하느라 피곤한데, 아침엔 어지럼증까지 있었다. 어질러진 집이 보이니 더 어지럽고, 말을 안 듣는 딸을 보니 더더 어지러웠다. 짜증이 머리끝을 뚫고 터질 것만 같았다.


내 속은 모르고, 화장실에서 나와 유쾌하게 아이들 준비를 마무리시키는 남편의 모습이 얄미웠다.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하필 ‘봄이 되면 마당에 쳤던 텐트를 걷자’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게으를까!’라고 짜증스레 생각하며 분통을 터뜨리려는 순간이었다.


아….. 남편이 게으른 것이 진짜 맞나? 텐트를 걷지 않았다고 게으른 건가? 오늘 남편이 무슨 일을 했더라?



아침에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 남편이 게으른가?

아이들의 가방 두 개를 싼 남편이 게으른가?

척척 아침등원을 잘 해내는 남편이 게으른가?

제주도에서 먹고살아보겠다고 글을 배우러 간 것이 게으른가?



나는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가. 내 마음을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살아갈 돈이 없음에도 내 사업을 도전하는 중이다. 심리학, 심리검사, 글쓰기, 치유작업 등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몽땅 복합시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탄생시켜보려 하고 있다. 현재는 답도 없고 끝도 없으며 모호한 일. 하지만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갈급한 마음에 물을 마시듯 일을 한다.


남편은 그것을 지지해 준다(대단하고 감사한 사람). 하지만 도통 일을 할 시간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남편도 지지해 주는데, 육아와 집안일로 시간이 없으니 혼자 답답할 노릇이다. 그러니 속력이 안 나고, 조급해지고, 짜증도 났던 것 같다.


욕구라는 것이 없어도 문제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커도 사람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아침이다. 내가 얼마나 사람을 매도할 수 있는지도 알아차린다.


나 스스로 말 안 듣는 딸, 아들, 게으른 남편으로 매도하면서까지, 순식간에 불행한 가족을 만들면서까지,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이 뭘까.


내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을,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며 부담을 덜어내고 싶었을까. 내 남편도, 출산도 내가 선택해 놓고는, 그런 건 몽땅 잊어버리고 ‘쟤들 때문이에요’라며 미숙하게 손가락질하고 싶었던 걸까. 마치 자신이 먹던 빵을 바닥에 떨어뜨려놓고는 “엄마 때문이야!”라며 짜증 내며 펑펑 우는 5살짜리 아이처럼.


손쉬운 변명이 얼마나 나를 순식간에 불행하게 만드는지 경험한 아침. 속절없이 흘러가는 하루라는 시간에, 스스로가 구멍을 내어 숨을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책임의 틈이 생길 것 같다.


나의 역할, 나의 상황, 선택을 짚어본다.


그래 가족, 내가 선택했다. 나는 행복한 가정을 반드시 꾸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하루를 선택하고, 잘 되지 않는 일들을 책임질 힘도 내게 있다. 집 청소를 미루는 것도 나, 일을 뜻대로 못해내는 것도 나, 오늘 하루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좌절하고 슬픈 것도 나.


아, 그리고 중요한 것을 잊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가족이 아니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


갑자기 답답한 명치가 뚫리고 몸에 긴장이 풀린다. 그래,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시간에 내 몸을 아끼기 위해 스트레칭하고, 일하고, 맛있는 것 먹자. 집 청소는 내가 오후로 미루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