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날 미워하지 않았다.

불순물을 안고 서는 법

by 숨틈

오랫동안 공석인 자리가 있었다. 자격을 충족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흔한 자격이 아닌 데다가 인력이 아주 많진 않은 제주라 안심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그 자리를 내가 가겠노라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그 자리는 내 자리였다. 마음속에서, 미래에 차지할 내 자리.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이력서를 썼다.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의 직장이었다. 솔직하게 임하자는 생각과 동시에, 아무래도 붙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들뜬 마음이었다. 진솔함과 드러나지 않는 가벼움이 공존하는 이력서가 완성되어 메일로 보냈다.


면접 당일.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세상에, 나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당혹감이 몰려왔다. 갑작스레 조급증이 몰려왔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요즘 연습하던 태도를 취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내가 상황을 바꿀 순 없으니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를 피력하려 열심이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내가 그 기업에 꼭 맞는 인력이 되려 간과 쓸개를 다 내어줄 듯 하기보다는, 나는 여기 존재하고 그 기업에 맞는다면 데려가길 바라며 면접에 임했다.


나이가 들 수록 이상하게 뻔뻔해진다. 믿는 구석이 생긴 건지… 믿을 곳 없을 때 냅다 달리며 인생을 쳐냈던 옛날의 내가 생각난다. 걔가 지금의 나를 보면 손으로 입을 막고 기함을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 뻔뻔하고 여유로운 모습에 ‘미쳤니 너?’라며 어이없어할 거다.


옛날엔 내가 녹여진 철과 같았다. 뜨겁게 달구어 녹여선, 다른 이들의 마음에 쏙 들게 바꾸어 식혔다. 내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고 말이다. 냉수에 담금질하다가 마음에 금이 갔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렇게 깨어진 마음과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싫다고, 지루하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를 키우는 일. 설거지, 청소, 정리정돈. 반복되는 일상은 오히려 나만의 리듬을 찾게 했다. 성과도 없이, 그저 어지른 것을 치우는 그런 무의미한 작업이라 느끼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가 하루를 주물러 만들어 왔나 보다. 깨끗해진 식탁과 정돈된 장난감, 그리고 건강한 요리는 내 손으로 만든 작지만 확실한 결과물들이었다. 그것들에 둘러싸여 서서히 회복했나 보다.


담금질하고 챙챙 두드려 나를 바꾸려 애쓰던 과거에서, 불순물이 있는 철광석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어떠한 단점도 다 내 것으로 안고선, 울퉁불퉁 한 채로 이게 나라고 당당하게 서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면접관들도 느꼈으려나. ‘이런 울퉁불퉁한 나라도 괜찮다면 가져가 쓰시라’며 소리 없이 외치는 나를.


이틀 뒤 탈락 문자를 받았고, 조금 울었다. 약간의 허탈감을 느껴서였나. 긴장이 풀려서 일수도, 오래간만에 맛보는 좌절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왜인지, 내가 별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절에 미치도록 민감했던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뜯어고치려던 내가 말이다. 날 좀 더 사랑하게 되었구나 하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울퉁불퉁한 채로 나로도 괜찮은 곳을 찾아갈 예정이다. 그것이 심리상담에서 말하는 건강한 개인이 가지는 자질이기도 하니, 내가 그것을 한껏 실천하며 살아보려 한다.


면접에서 떨어진 건 신의 뜻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 사건이다. 그곳에 더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내가 어울리는 곳은 다른 곳임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속상함과 후련함을 안고, 깨어지지 않은 온전한 나를 안고 서는 집으로 갔다. 나의 세상에서 새로운 하루를 보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 집이라는 공간에서, 행복을 가꾸고 사랑을 느낀다. 그렇게 면접에서 떨어진 아픔을, 조금 더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