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자립하기 위해, 제주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나를 세우기

by 숨틈

'정말 하기 싫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집을 치우고, 끼니를 챙기고, 미운 네 살인 첫째와 정신없는 실랑이 하며 간신히 밤을 마무리하는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저 문장만 가득했다. 이틀 정도 바짝 열심히 가사일과 육아를 하곤, 셋째 날부터는 며칠을 퍼져있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의 숏폼에 푹 빠졌다. 그렇게 여러 날을 반복해서 살다가 생각했다. 언제부터 내 인생이 해야 할 일,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일 두 항목으로만 구성되어졌지? 어찌 되었든 내게 주어진 일들인데 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무감만 가지게 된 것일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기쁠 수는 없을까. 내가 하는 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일 수는 없을까.


닌 해야만 하는 일을 정말 싫어한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야만 하는 일을 마주하면 그냥 푹 퍼져버린다. 다른 일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내게 소중한 가족들과 있는 시간 동안 '하기 싫다'고만 생각하며 평생을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더없이 불행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를 찾아야만 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크게 호통치는 아버지와 그 자리에 굳어버리는 어린 나. 나의 실수로 쏟아진 비릿한 우유 냄새와 아버지의 호통이 섞여 내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아버지의 천둥 같은 호통소리는 언제 어디서 들려올지 몰랐고, 나는 먹구름 아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며 우왕좌왕하며 살았다. 사실 유년기에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로 혼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 가득했다.


‘자립’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이다. 나는 아버지의 망령에 예속되어 살아왔다. 내가 어리고 힘이 없을 때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현재는 형태가 없으니 망령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어마무시하다.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오고 자식 둘을 건사한 멋진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는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타지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하나의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세상천지 아무도 없다'. 혼자 힘으로 아득바득 살아온 아버지 마음엔 큰 불안이 자리 잡았고, 그 큰 불안은 또다시 아버지를 혼자 힘으로 살아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버지는 거친 세상 잘 살아나가는 멋진 사나이였지만, 자식입장에서는 아버지를 감당하기에 버거웠다. 보통 누군가를 대할 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쓴다지만, 아버지는 채찍만 있었다. 아버지 자신의 삶이 버거워 짜증이 그득했고, 작은 실수에도 호통을 쳤으며, 조금이라도 느리면 큰 소리로 엄하게 재촉했다. 그 결과 나는 작은 지적에도 한껏 움츠러드는 새가슴 어른이 되었다.


채찍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떨어지며 채찍이 없는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걸 위해 움직이는 능력치는 매우 낮았다. 굳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로 인해 움직였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없으니 멈췄고,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처음 혼자가 되었을 때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인데, 초, 중, 고를 억지로 다니다 대학을 가니 자유가 카펫처럼 깔려있었다. 처음으로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 그냥 드러누워버렸다. 출석도, 시험도 놓아버렸다. 처벌이 없으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부드럽고 포근했지만 자책스러웠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집안일도 ‘깨끗한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더러워져서 남편이 싫어할까 봐’하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실수에 엄하고, 항상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는 아버지 망령의 메시지는 세상과 똑같았다. 공부, 시험, 직장생활, 심지어 SNS 게시물과 댓글 전반이 그러했다. 현재 주부로 일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집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빠르게, 완벽하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려 했고, 쉽게 버거워졌으며, 짜증이 차올랐다. 간간이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 하는 이야기들도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해낼까,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메시지들은 나의 마음을 건드려 작은 아이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서른 중반을 넘기고 있는 성인임에도 내 인생에는 보이지 않는 채찍이 여기저기 휘둘리고 있었다.


나는 사실 생각이 많고, 상당히 느리며, 목적지만 보고 달리기엔 예민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자주 쉬며 토닥여줘야 하는 인간이다. 좀 숨 쉬고 싶었다. 생긴 대로 살며 호흡하고, 느리게 내 세상을 살피며 자연과 사람과 사물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제주가 그런 느낌이었다. 제주에 오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에 오니 제주의 행복은 사람마다 모두 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보드게임에 빠져 보드게임 카페를 열고자 작은 카페부터 운영하며 사람을 모으는 사람, 캠핑카로 세계일주를 하기를 꿈꾸며 한국 각지를 돌다 제주에 머무르는 사람, 덩굴이 좋아 덩굴을 기르며 카페를 하는 사람……. 나는 여기서 이방인이 아니었고, 이제야 내가 좋을 대로 세상을 보고 움직여도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서 받는 느낌이었다. 비로소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혼나지 않은 나는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었을까. 어떤 모습이든 처벌하지 않는 제주에서 스스로 서보려고 한다.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나를 품어줄 따뜻한 섬에서 살며 행동하고 느끼고 기록하려 한다.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이 여정을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