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함으로 생존했다
무더운 여름이다. 집에서 에어컨만 쐬고 있으니 답답해서 마당에 나갔다. 마당의 볕은 상당히 뜨거워 정수리가 익고 팔이 타는 느낌이었지만, 볕에 몸을 내놓기로 화끈하게 결정해서 그런가 몸은 더워도 마음이 이상하게 시원했다.
더웠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가 아닌 숲을 가기로 했다. 숲길을 가는 길은 좁고 온통 나무만 무성했다. 새파란 하늘에 두터운 하얀 구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있었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날리고 있었다. 밖의 햇빛이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것마냥 숲길 안은 어둡고 선선해서, 불편감 없이 즐겁게 여름 산책을 즐겼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보고있으니, 제주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한 해풍으로부터 나무들은 살아남아야했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바람과 싸워가며 자라난다. 제주 에코랜드 기차를 타고 좁다란 기찻길을 지나며 구불구불하고 무성한 여러 나무를 보고있는데 스피커에서 ‘제주 나무의 생명력을 느껴보세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무들을 보니 얼마나 투지있고 끈질겨보이던지.
제주 바람과 나무의 관계를 생각하며 길에 난 나무들을 보니 나무들은 한 쪽 방향으로 나뭇가지와 잎들이 뻗어져있었다. 주로 그 지역에서 잘 부는 바람 방향으로 형태가 치우쳐져있다고 했다.
하고 많은 감정 중, 하필 우울 쪽으로 치우친 나를 생각해본다. 어떤 강한 바람으로부터 나를 살아남게 하려고 지독하게 내 탓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원인은 행복하지 않은 가정이었을까, 내 타고난 예민함이었을까. 확실한건 나는 고통스러웠고 자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최선의 일이었을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라는 구절과 같이 한 명도 빠짐 없이 흔들린다. 나는 제주 나무의 스토리가 썩 마음에 들어 삶에 몸을 맡기기로 한다. 제주 나무의 운명은 혹독하지만 또 전사같은 생명력이 넘쳐 흐른다. 흐르는 잎들과 같이, 바람결에 삶이 흐른다. 운명보다 작은 나는 삶에 맞서 그저 살아가다보니 무언가로 만들어진다.
그래, 생존하다가 만들어진 형체가 우울일 뿐이다. 생각이 이어져가다보니 내가 싫다는 느낌이 없어진다. 그저 내가 두어진 자리가 제주 날씨만큼 혹독했을 뿐이다. 내가 뭔가를 특출나게 잘못해서 이런 게 아니고, 오히려 나는 치열하게 살아냈을 뿐이라고 말해준다. 제주 날씨는 그렇게 나를 위로해준다.
살랑거리는 나무와 선선한 바람이 언제 돌풍으로 바뀔지 모름에도, 이 순간 아름답다고 느낀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제주 날씨 속에서 여러 이들의 생존을 생각한다. 그리고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