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Drama) '굿파트너'

2024 내 현실과 맞물려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빼 놓을 수 없다.

by OH 작가



2024년 한 해가 나에겐 상처였고, 뿌옇다 못해 탁한 한 해였다. 11년을 참아 준 상대의 이기심과 자신 밖에 모르는 뻔뻔함에 결국 상처로 가득한 민사 소송의 지저분함으로 물들었었다. 그리고 증오를 넘어서 산산조각난 기대가 씻을 수 없는 무너짐으로 마무리 된 한 해다.


그 와중에 정말이지 깊은 공감으로 눈물을 흘리며 시청할 수 밖에 없었던 SBS 드라마 '굿파트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굿 파트너에 나온 대사 하나하나가 나에겐 가슴 깊이 찔려 들어 오는 공감 그 자체였다.










"서로 문제가 있으니까 이혼하는 거겠지."


"좋겠네요, 이제 남자도 많이 꼬이겠고.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 자식이 이혼한 집 자식과 결혼 한다고 하면 허락 하시겠어요?"


"그래도 참아야지. 여자 혼자 어떻게 사냐?"


"다 참고 살아. 이혼이 자랑이야?"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사자의 결정이고, 이혼이다.


나도 내 인생에 이혼이란 결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며 살았다. 아이한테 상처 주기 싫고, 편견으로 난무하는 세상의 편견들에 맞설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이혼이다. 이혼하고 싶어서 이혼하는 사람은 세상 천지에 없다. 상대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결국 극에 달하면, 상대와 함께 하는 게 나와 내 아이까지 인생의 절벽으로 밀어 버리게 됨을 느끼는 순간 결정하게 되는 것이 이혼이다.


나도 그랬다. 뒤 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상대 덕분에 나는 결혼 11년 동안 내 명의와 내 등신 같은 헌신만 이용 당한 기분이었다. 하나뿐인 내 아이에게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 마디로, 이대로 같이 사는 게 더 고통이고 절망이겠다 싶었다.





SBS 드라마 '굿 파트너'는 그런 내가 결국 이혼이란 결심을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혼 이랑 민사 소송을 처음 겪어 본 끝무리에 만난 드라마다. 소재 자체가 일단 끌릴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유책 사유의 증거가 분명한 상대와 1년 넘게 걸리는 재판까지 도저히 가지 못한 나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조정으로 빨리 정리해 버린 마무리 시점에서 만난 드라마가 '굿파트너"다.



"어느 순간 딱 받아들이는 순간이더라. 앞만 보고 가게 되는 순간."


"네가 자격을 얘기해? 똑똑히 들어. 내 앞에서 내 딸 이름 그 입으로 절대로 올리지마."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를 지켜 내시라고."


"위자료를 한 푼도 내기 싫었으면 그런 일을 안 하셨어야죠. 변호사 선임료를 내면 있던 잘못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최소한 아이한테 엄마 사과 받았으니까 괜찮다고,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처럼 기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 줄 수는 있겠다."


"이혼 통계는 잘 알죠. 한 번 배신한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배신한 사람은 없다는 거 명심해요."


"난 앞으로 아빠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잘못한 사람은 벌 받아야지."


"어쩌면, 어쩌면 나도 처음부터 걔네들한테 사과 받구 싶었는지도 몰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내 눈에서 참았던 눈물들이 터져 나오게 했다.

조정 마지막 날, 조정 문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차은경은 사과라도 받았다. 나는 사과는 커녕 점점 더 아이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는 뻔뻔함과 이기심의 바닥과 마주쳤다.


이혼이란 그렇다. 좋게 좋게 끝낼 수 있는 현실의 법적 정리가 아니다.


SBS 드라마 '굿파트너'는 이혼 변호사가 직접 대본을 집필한 만큼, 다양한 형태의 이혼 과정들을 여실히 보여 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제대로 된 감정 이입이 가능 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굿파트너'에는 그러한 현실적인 이혼의 상황들이 많이 재연된다. 그 이혼의 상황들에서 정말 다양한 형태의 인물상들도 많이 재연된다. 절대 모든 게 허구가 아니다.

정말이지 '굿파트너'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본방 사수를 하며 울고 웃었다. 내 속에서 참고 있던 울분들과 이를 악물고 참았던 감정들을 그대로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같은 여정을 잠시 함께 걷듯 공감대를 확실하게 이끌어 준, 친구 같은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거 같다.







"그렇다고 이혼을 하냐? 참고 살아야지. 어떻게 살려고."


"왜 참아요? 내가 속병나서 죽을 지경인데 왜 참고 살아요?"


회사에서 내가 이혼 했다고 얘기를 했을 때 어느 여사님이 그러셨다. 다들 참고 산다고, 혼자서 애랑 어떻게 살려고 이혼을 했냐고 부드럽게 푸념을 하셨다.


남들의 편견이 무섭기 보다, 늦은 나이에 닥친 경제력이 무섭기 보다, 털끝 만큼도 미안함 없는 그 얼굴에 침을 뱉어도 모자랄 판이다.

나의 감정과 나의 상처에 대한 배려가 눈꼽만큼도 없는 상황에서 참고 산다는 것은 나를 내 스스로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한테도 계속 상처를 주는 일방적인 언어와 행동에도 잘못됨을 모르는 태도에 대해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약을 달고 살았다. 생전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을 제일 많이 왔다 갔다 한 시기였다. 그만큼 과정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 가며 견뎌낸 그 순간의 과정들을 SBS 드라마 '굿 파트너가'가 여실이 보여 주고 있었다.


SBS 드라마 '굿 파트너'는 나에게 그런 드라마였다. 힘든 과정의 순간에 참고 참았던 감정들을 거울처럼 비추어주며 토해내게한 드라마다. 겪어보지도 않고 '에그, 저 나이에 어떡해."라고 은근 불쌍한 눈과 은근 비꼬는 언어들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공감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드라마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잘 살 것 같았던 타인의 불행에 현실은 절대 부드럽지 않다. 그저 술안 주 삼듯 가십 거리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굿 파트너'에서 변호사로서 인기 있고, 능력 있는 여자조차도 그런 비참하고 토할 거 같은 울컥함을 가득 안게 되는 게 이혼이다.


그 이혼이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는 쉽지 만은 않은 여정이다. 세상의 편견 보다, 당당하게 내 자신을 찾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내딛는 두려운 발걸음이다.

이혼은 절대 손가락질 받을 만큼 죄 짓는 일이 절대 아니다. 그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술 안주 삼을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다.


결코 가볍지도 않고 앞날이 막막한 그 길을 택했을 때는, 그만큼 지치고 모욕적인 감정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란 걸 알아야 한다.








(싱글맘에 워킹맘입니다. 매주 발행일에 맞춰 글을 써 올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써 올릴 수 있을 때, 되도록 성실하게 좋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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