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압축된 에스프레소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얹어짐
가끔 에스프레소 커피가 생각은 나는데, 이제는 그 쓰디쓴 압축믜 맛에 선뜻 입이 가져가 지지 않는다. 예전엔 그 진하고 쓰기만한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그렇게 잘도 마셨을까 싶을 정도다.
나는 그럴 때 아포카토를 주문한다.
뜨겁고 진하도록 검은 에스프레소 원액에 하얗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얹으면 바로 그 아포카토가 된다. 그 아포카토를 티 스푼으로 한 스푼 떠 먹는다. 금새 녹아 버릴 아이스크림을 티 스푼 가득 떠서 에스프레소 원액에 푹 적셔서 입에 넣는다.
에스프레소의 쓰디쓴 본래 그대로의 맛이 아이스크림의 차갑고 달콤한 맛에 배여들어 녹아든다. 그 뜨겁고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쓰디쓴 그 맛으로 아이스크림 속에 숨어든다. 그래서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포카토를 티 스푼으로 한 스푼 한 스푼 떠 먹고 있다 보면, 카페의 창가 자리 바로 앞에 창밖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기분이 생각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데, 나만 힘든 건가 싶은 그 기분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생각난다.
아니, 카페 창가 자리 바로 앞에 앉아 내가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길거리의 사람들도 너를 보면 아무 일 없이 이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냥 한 사람일 뿐이야. 그것은 꼭 아포카토와 같아.
우리 모두 뜨겁지만 쓰디쓰고 검은 원액의 에스프레소 같은 인생은 살아가. 그 위에 하얗게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얹은 채 살아가.
그래서 창밖으로 멍하니 쳐다보는 길거리 사람들의 모습이 네 눈에는, 나만 힘든 것처럼 다들 평온하고 편안해 보이는 거야.
그 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2025년 12월 31일 마지막 날, 갈곳 없이 길 잃은 양이 되어 무기력하게 멍하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목사님께 회계하는 글을 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어김없이 맞은 2026년 1월 1일 첫 날, 따끈한 떡만두국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다가 어제 2일날에야 친구 덕에 따끈하고 속이 뎁혀지는 떡만두국을 한 그릇 먹었다.
아들은 판사한테 자필 편지까지 쓰고, 싫다는 걸 엄마인 내가 잘 달래서 가사조사관 상담사의 아들 면접을 하게 해 줬었다. 아들은 아주 분명하고 스마트 하게 만나기 싫은 거 맞다고 자신의 의견을 의심 없이 전했다.
가사조사관 상담사께서는 아들에게 웃으면서 말씀 하셨단다.
"너처럼 분명하게 대답 잘 해줌 내가 애들하고 상담하기 참 편하겠다."라고.
그 뒤로 아들은 더는 법원과 상대방의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 불편한지 얼굴을 찡그리며 듣기 싫어 했다.
면접 교섭 심판은 양육비를 100% 지불하는 상대만이 아이 보여 달라고 거는 심판이란다. 그런데 나는양육비도 못 받고 있다. 그래서 1년 3개월 동안 157,00,000원의 못받은 양육비가 쌓여 있다.
거기다 상대는 판사에게 양육비 못 주겠다고 변호사 쓰겠다는 서면까지 제출 했었다.
양육비 이행원에서 도와주신 변호사님은 상대방이 낸 자료를 보면 감액 소송이 우리가 불리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양육비 감액 소송은 결국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에 의해 기각 됐다.
그런데 2025년을 떠나보내는 12월의 마지막 날들 속에 강제 면접 교섭 명령에 대한 내용이 씌여진 판결문을 받았다. 아들은 너무 싫어했다. 절대 안 나간단다. 싫단다.
나는 다음날 바로 아들을 위해 즉시 항고장을 제출했다. 면접 교섭은 의무가 아니며,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혼율이 49%인 이 시대에 아이의 의견이 묵살되고 무시된 게 이해가 안 갔다.
아이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하나의 인격체다. 네 의견이 어떻든 어른들이 이렇게 결정했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건 아이의 정서를 파괴하는 거다. 나는 그 강제 면접 교섭 명령이 너무 폭력적으로 보여졌다.
양육비 이행원에서도, 여기저기 알아본 변호사들 말도, 분명히 본인인 아이가 거부하고 싫다함 법적으로도 강요할 수 없다고 했었다. 본인인 아이의 의견이 먼저이고, 아이의 의견도 인권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고 했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판사가 나가라고 해도 싫다고 고개를 흔들어 대는 아들을 보며 슬펐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진리다.
세상은 절대 공편하지 않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헷갈릴 때가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마냥 공평하지 만은 않은 세상을 탓하며 주저 앉아 있을 수 만도 없다.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
너무나도 시리게 느껴졌던 한 주의 겨울 바람이 매섭더라도, 살아 있다면 결국 걸어가게 된다. 숨을 쉬고 있으니 간절히 희망을 바라게 된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제발 이 살아감에 있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굶주림이 끝이 아니길 바라게 된다.
아포카토와 같이, 쓰디쓰고 달콤하지 만은 않은 일상에 하얗고 달콤한 아이크림 한 덩이가 얹어진다면 우리에게 조금 위안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