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대본

친구일까? 적일까?

by OH 작가



S# 1. 아파트 단지.

아파트 단지, 동 건물 앞 주차장에 보이는 선일의 차.



S# 2. 선일의 차 안.

운전석에 등을 푹 기대고 앉아 동 건물 입구를 쳐다보며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차창 밖으로 차 옆 저만치서 예린이가 선중과 선지가 동 건물 앞으로 걸어 오고 있는게 보인다. 선일은 보지 못한다. 예린의 한 손에 들린 시장 바구니.

운전석 차 문손잡이를 잡고 까딱까딱거린다. 문을 열까 말까, 다른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망설이고 있다.

동 건물 입구 계단 앞으로 걸어온 예린, 선중, 선지.

선일은 예린, 선중, 선지의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조수석 쪽으로 재빨리 몸을 눕혀 숨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예린은 선일의 차를 알아본 듯 차 쪽을 힐끔 보더니 선중과 선지와 동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선일 : (자존감 무너진다) 근데 내가 왜 숨지? 내가 뭐, 이렇게까지 잘못한 거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선일은 ‘으씨’하는 표정으로 동 건물 입구 쪽을 슬며시 살피더니 예린, 선중, 선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운전석에 등을 푹 기대로 두 손과 두 발을 발버둥 치듯 흔든다.

배에서 다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선일 : (짜증) 어쩌라고.


선일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선일, 한 손으로 배를 움켜 잡고 풀 죽은 얼굴로 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예린이다.


예린 : (톡 메시지) ‘차에서 밤이라도 새게? 입 돌아가겠네, 쯧쯧. 등갈비 넣고 김치찌개 할 건데 맘대로 해.’

선일 : 뭐야? 본 거야?


선일은 울상인 표정, 배에서 다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선일은 차의 시동을 끈다.


선일 : 그래 뭐, 일단 먹고 보자.


선일은 차에서 내린다.



S# 3. 동 건물 앞.

차에서 내려 동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입구 앞에서 발신자를 확인하고 잠시 멈춰 서서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쥐고 흔들며, 받을까 말까 안절부절하는 선일.


선일 : 기다리라니까 (짜증을 애써 참는다) 내가 돈이 있는데도 안 주냐고?


옆으로 같은 동 주민이 지나가며 쳐다본다. 선일은 쪽팔린 듯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냥 끊어 버린다.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해 보이며 슬며시 같이 들어간다.

들어가며 조용히 혼잣말로 투덜.


선일 : 예린이가 알면 난리 날 텐데.



S# 4. 거실.

환하게 켜져 있는 거실, TV를 보며 앉아 있는 덕환.

인복이 쟁반에 귤을 담아 소파 앞으로 와 슬그머니 덕환의 눈치를 살피며 소파 앞 바닥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 귤이 담긴 쟁반을 올려놓고 귤을 하나 까서 덕환에게 먼저 건넨다.


인복 : 제주도에 있는 그 당신 여자 친구가 보낸 거니 먹어요.


덕환, 귤을 받는다. 퉁명스럽게,


덕환 : 여자 친구는 무슨. 그냥 동창이지.


인복, 피식 웃는다. 알았다는 듯, 조용히 혼잣말.


인복 : 누가 뭐래? 여자는 여자 맞지 뭐. 남잔가 그럼.


덕환, 인복을 그냥 한번 힐끔 쳐다보고 다시 TV를 본다.

인복, TV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귤을 까먹으며 덕환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핀다.

인복의 핸드폰 알림음이 울린다. 인복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선일이다.


‘엄마, 얘기 좀 해 봤어? 아버지 뭐라셔? 나 진짜 급해. 이러다 예린이 알면 이혼이라고.’


인복, 핸드폰을 탁 닫아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혼자 안 들리는 소리로 투덜투덜,

얘기는 꺼내야겠고, 덕환의 눈치는 보이고,


덕환 : (눈은 TV에 집중) 더 줘봐.


인복 : 뭘?


덕환 : 귤, 더 줘 보라고.


인복, 입을 삐죽이며 껍질 깐 귤을 덕환에게 건넨다. 받아 드는 덕환.

인복의 핸드폰 알림이 또 울린다. 인복은 안 봐도 알겠다 싶은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보지 않는다. 괜스리 덕환에게 짜증을 부린다.


인복 : 아휴, 리모컨 어딨는데? 맨날 그놈의 뉴스는, 드라마 할 시간 됐을텐데.


인복은 벌떡 일어나 휘둘러 보더니 덕환 옆에 있는 리모컨을 홱 가져온다.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더니 드라마를 튼다.

덕환, 쳐다보더니 화가 난 듯 인복에게서 리모컨을 홱 뺏아 온다. 다시 뉴스를 튼다.

인복, 꼴 보기 싫다는 듯 덕환을 노려본다. 다시 덕환의 손에서 리모컨을 낚아채려는데 덕환이 꽉 잡고 안 놔 준다.


덕환 : 이 사람이 진짜. 내가 먼저 보고 있었잖아.


인복, 씩씩거리며 리모컨을 결국엔 빼앗아 드라마를 튼다.

덕환, 소파 가운데 떡하니 앉아 화난 얼굴로 인복을 쳐다본다. 인복은 덕환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 리모컨을 다리 밑에 숨기고 귤을 까 먹으며 드라마를 본다. 들으란 듯 툴툴 거리며


인복 : 아들 새끼가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대는데, 그 돈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꽁꽁 움켜 쥐고 내놓지도 않고.


덕환 : (버럭) 결국 그 소리야? 나만 돈 있어? 당신도 쌈짓돈 모아 놓은 거 있잖아. 그거 줘 그럼. 그동안 그렇게 뼈 빠지게 키워 줬음 됐지 나이 마흔이 다돼 가는 애들을 언제까지 뒷바라지해? 지금 선일이만 힘들어? 선일이 해 주면 유일이는? 유일이는 자식 아니냐? 선일이는 당신 등살에 여태 해 준게 얼마야?


인복 : (지기 싫다는 듯 더 큰소리로 버럭) 아이고, 그래, 누가 뭐래? 걔는 이미 이혼했잖아. 선일이 지금 그거 안 막음 이혼 당할지도 모른다잖아. 자식 하나 이혼 했음 됐지. 아들 새끼까지 이혼 시키고 싶어요?


덕환, 뭐라고 버럭 하려다 됐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더니 양말을 챙겨 신고, 잠바를 챙겨 입고 나온다. 현관으로 쿵쿵 걸어가더니 나가 버린다. 쾅하고 거세게 닫히는 대문 소리.

인복, 대문 쾅 닫히는 소리에 은근 놀랜다. 짜증이 나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인복,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그냥 끊어 버린다. 다시금 벨이 울린다. 인복은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전화를 받아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인복 : 돈돈 소리 좀 그만해 너도. 네 아버지 고집을 나보고 어쩌라고.


인복은 전화를 확 끊어 버린다.



S# 5. 오피스텔 안.

끊어진 핸드폰을 쳐다보며 벙한 유일의 얼굴.


유일 : 내가 무슨 돈돈 소리를 했다고? (고개 갸웃) 뭐야?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하중 : 엄마, 나 물 좀.


유일 : 어? 어.


유일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는 하중에게 컵을 받는다. 유일 옆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건넨다.

유일은 밥 먹는 하중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유일 : (속엣말) 어쩌냐, 아들. 엄마 이제 진짜 개털인데. 언제 다시 집을 사며, 언제 다시...


유일은 작은 한숨을 내쉬려다 하중을 보며 안으로 삼켜 버린다.

유일은 핸드폰으로 선일에게 전화를 건다.


S# 6. 부엌.

선일, 예린, 선중, 선지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다. 선일은 등갈비 김치찌개와 밥을 정말 맛있게, 먹는 중이다. 밥공기 바로 옆에 올려 놓은 핸드폰 벨이 울린다. ‘잘났다 누나’다. 선일은 아무 생각없이 먹는데 집중하며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는다.


선일 : 어, 누나. 저녁밥은? 나는 예린이가 등갈비 김치찌개 정말 맛있게 해 줘서 먹는 중인대 ~ 진짜 맛있어.

예린은 선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에휴, 하는 표정이다가 금세 피식 웃는다.



S# 7. 오피스텔 안.

유일,


유일 : 너, 엄마한테 돈 돈 거렸냐? 귤 좀 더 달랠까


유일은 핸드폰을 식탁으로 내려놓고, 먹던 밥을 먹는다.



S# 8. 부엌.

선일, 당황한 듯 급하게 스피커 폰을 끄고 핸드폰을 집어 들어 귀에 댄다.


선일 : (일부러 큰 소리로) 그래, 엄마가 준 귤이 참 맛있지? 하중이가 좋아하나 보네.


예린, 선중, 선지가 선일을 쳐다본다. 선일은 시선들을 느끼고 애써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척 한다.



S# 9. 오피스텔 안.

유일,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선일의 웃는 소리가 들리는 핸드폰을 잠시 쳐다본다.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대고.


유일 : 뭐래? 너 엄마한테 돈 얘기했냐고? 난 줄도 모르시고, 대뜸 돈 돈 거리지 좀 말라고, 네 아버지 고집을 어쩌냐며 버럭 화내고 끊으시던데. 무슨 일 있어?


하중이 밥을 먹으며 유일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S# 10. 부엌.

선일은 수저를 내려놓는다. 엉덩이를 드는데 예린이 팔을 잡아끌어 쿡 앉힌다.

선일 애써 허허, 웃지만 미칠 거 같다.


선일 : 어, 그래 누나. 내가 엄마한테 귤 더 받아서 갖다 줄게. 그럼 끊어.


선일은 재빨리 전화를 끊어 버린다. 아무일 없다는 듯 다시 수저를 들고 등갈비를 밥 위에 가져다 놓고 뜯는다.

예린, 선일을 빤히 쳐다본다. 선일 예린의 시선을 느끼지만 모른척하며 등갈비를 뜯는다.


예린 : 그래서? 결과는?


선중 :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레슨비 주신대? (짜증, 울상) 가율이가 오늘 나만 레슨비 안 냈더라고 단톡방에 올렸단 말야. 쪽팔리게.


선일, 고개를 숙이고 김치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 입에 떠 넣는데 켁켁거린다. 목에 걸린다. 선일은 옆에 있던 물컵을 들어 단숨에 들이킨다.



S# 10. 오피스텔 안.

끊긴 핸드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전화를 다시 걸까 말까 하고 내려다본다. 하중이 그런 유일을 쳐다보며,

하중이 : 왜?


유일 : (반 장난스런 표정으로) 삼촌이 수상해서.


하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TV 앞으로 가 태블릿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자리 잡고 앉는다. 귀 한쪽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친구들과 통화를 시작하는 거 같다.


유일 : (단호하게) 2시간 만이야.


하중, 유일은 쳐다보지 않고 태블릿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하중 : 알았어, (블루투스 이어폰을 손으로 잠시 막고 엄마 목소리 너무 커.


유일은 하중을 쳐다보며 입술을 한 번 삐쭉거린다. 그래도 하중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미소 지어진다. 유일은 먹던 밥을 먹는다.



S# 11. 놀이터.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덕환, 저녁이라 놀이터에 아무도 없다.

아파트 단지 길목으로 뜨문뜨문 걸어다니는 주문들만 보인다.

덕환은 답답한지 손으로 상의 윗주머니를 괜시리 더듬다가 에휴 한다. 덕환은 갈증이 나는지 목을 살짝 만지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친구 전화 목록에서 여기저기 망설이며 아래위로 훑다가 ‘모자란 아들놈’을 한참 내려다본다.


인복 : (E) 선일이 지금 그거 안 막음 이혼 당할지도 모른다잖아. 자식 하나 이혼 했음 됐지. 아들 새끼까지 이혼시키고 싶어요?


인복의 목소리가 덕환의 귓가를 괴롭힌다. 덕환은 깊은 한숨을 쉰다.


덕환 : (혼잣말) 내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지은 건지, 어째 자식들이 자리 잡을 나이에 이렇게 둘 다.


덕환은 ‘모자란 아들놈’에게 전화를 건다.



S# 12. 쓰레기장.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

선일, 한 손에 종량제 봉지가 들려 있다. 툭 던지듯 아무렇게나 대형 쓰레기 통에 던져 놓고 쓰레기장 옆 벤치에 앉는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답답하다.

선일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 선일은 발신자를 확인한다. ‘아버지’다.

선일은 자기도 모르게 놀래서 담배를 떨어뜨리는데 슬리퍼 신은 발등에 떨어진다.

선일은 팔짝 팔짝 거리며 ‘아이씨’ 한다.

그러면서도 얼른 전화를 받는다.


선일 : 네, 네 아버지. 그럴게요.


선일은 전화를 끊고 아파트 단지 입구로 뛰듯이 걸어간다.



S# 13. 단지 입구.

아파트 단지 입구.

입구로 걸어오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는 선일.

택시를 부르고 입구 앞 도로 앞에 서서 예린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다.


‘아버지가 부르셔서 갖다올게.’


선일,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알람 소리가 울린다. 예린이다.


‘선중이 레슨비 받아와.’


선일은 예린의 답장을 보고 핸드폰을 탁 닫으며 주머니에 넣으며


선일 : 그래, 돈 돈.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진짜 어디서 돈 좀 콸콸 떨어져 주라.


택시가 선일 앞으로 다가와 정차한다. 잽싸게 택시에 오르는 선일.



S# 14. 야식당.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덕환, 아주머니가 놓고 간 잔 두 개랑 소주랑 김치전.

덕환은 소주병을 따서 술잔에 따라 단숨에 원샷 한다. 김치전을 다 찢어 놓는다. 한접 입에 넣는대, 저만치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선일. 덕환은 보지 못한다.

선일은 식당 안을 둘러보더니 덕환을 발견하고 다가와 마주 앉는다.


선일 : 왜 먼저 시작하셨어요?


선일은 앉자마자 덕환의 잔에 가득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가득 따른다. 테이블 위 김치전을 힐끗 보고, 테이블 위를 슬쩍 훑는다. 손을 번쩍 들고 큰소리로


선일 : 이모, 여기 메뉴판 좀 주세요. (덕환을 보고) 뭐 더 시켜도 되죠?


덕환 : (잔을 들고 김치전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너랑 나랑 이거면 됐지 뭘 또?


선일 : 아니, 뭐 그냥.


아주머니가 메뉴판을 갖다 놔 주고 간다. 선일은 메뉴판을 훑어보며 주문하고 싶은 메뉴가 많아 고민하는 눈치.

덕환은 그런 선일을 힐끔 보고는 잔을 들어 원샷한다.

선일은 한 손을 번쩍 들고 큰소리로.


선일 : 이모, 여기 짬뽕탕 하나요.


선일은 메뉴판을 내려놓고 덕환이 소주 병을 들려는 걸 보고 얼른 소주병을 든다. 덕환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준다.


선일 : 건배도 안 하고 혼자 드세요, 왜?


덕환은 선일은 물끄러미 쳐다보다 잔을 들고 다시 원샷 한다. 선일은 덕환과 건배하려 잔을 덕환 쪽으로 내밀었다 다시 거둔다. 괜스리 덕환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잔을 들고 혼자 원샷 한다.


덕환 : 너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데 네 엄마가 그렇게 궁시렁 돼?


선일 : 아버지 그게 아니라.


덕환이 테이블 위를 쾅 내리친다.


덕환 : (버럭) 무슨 일이냐고? 너 나의 돈에 손댔냐? 사기라도 쳤어?


식당 안 주변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선일 : (억울하다는 듯) 아버지 무슨 그런.


덕환 : 그럼 대체 무슨 일이길레 네 엄마가 그렇게 궁시렁대? 내가 너한테 돈을 안 줬어. 여태 네 누나 몰래도 해 준게 얼마냐? 네 누나는 너처럼 그렇게 돈 많이 받아 간 적이 없어. 이놈아. 자식이라고 둘 밖인데 네 누나가 말은 안해도 지도 힘든데, 지는 대놓고 편애 당하는 거 같아서 마음 상하지 않겠냐?


선일, 괜히 할 말이 없다. 입이 대발 나왔다. 표정이 급 우울해진다. 괜히 어깨가 축 처진다. 선일은 소주병을 병째 들고 벌컥벌컥 마신다. 울고 싶은 얼굴이다.


선일 :(볼멘소리) 나라고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어요. 내 맘대로 안 되는데 어쩌라고요.


선일, 울 거 같은 얼굴로 앉아 있더니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 한 장을 덕환 얼굴 앞에 갖다 댄다. (대형 창고 같은 곳 앞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40대, 50대, 60대들이 따닥따닥 몇 줄로 정말 길게 줄 서 있는 사진.)


선일 : 이거 봐요. 배달 업체 일일 알바에 새벽부터 이렇게 줄을 섰대요. (핸드폰을 내리고 힘없이 앉아) 시대가 그렇잖아요. 내가 힘들고 싶어 힘든 거냐고요. 저출산에, 대기업들 전부 다 희망퇴직으로 갑자기 내쫓긴 40대, 50대들이 몇천 명이래요. 30대들도 취직도 쉽지 않고, 시대가 그런데 뭐, 요즘 주변 지인들 얘기 들어 봄 부모님들이 자식들 시대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증여들 하고 있다던데 뭐.


덕환 : (버럭) 나 젊을땐 죽어라 열심 살았어. 열심 사니까 네 엄마랑 그만큼 일궈 놓은 거고.


선일 : 아버지 시대랑 지금 시대랑 같아요? 우리 세대는 개천에서 용나기 절대, 절대 가능성 없다고 할 정도잖아요. 나는 뭐 열심 안 산다는 거에요, 그럼?


덕환은 속이 터질 거 같다. 깊은 한숨만 쉬어진다.


덕환 : (큰 소리로) 여기 소주 한 병 얼른 주세요.


아주머니가 소주 한 병을 따서 테이블에 놓고 덕환과 선일을 번갈아 쳐다보고 간다.

덕환은 소주병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더니 테이블 위에 반만 나은 소주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선일을 쳐다보며 가슴을 손으로 치듯 쓸어내리더니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린다. 나갔다가 금세 다시 들어오더니 카운터에서 소리친다.


적환 : 여기 계산해 줘요.


선일, 등을 살짝 돌려 계산하는 덕환을 쳐다본다. 다시 테이블 위를 쳐다본다.


선일 : (혼잣말) 소주 한 병만 더 계산해 주고 가시면 좋겠는데.


반만 남은 소주병을 보는 선일의 어깨 너머로 덕환이 식당을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S# 15. 길거리.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터벅터벅 혼자 걸어가는 덕환의 모습.

덕환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S# 16. 아파트 단지.

인복과 덕환이 사는 신축 아파트 대단지 전경.

밤이다. 단지 안 가로등들이 환하고 예쁘다. 저만치 덕환이 단지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S# 17. 거실.

불이 다 꺼져 있다.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덕환이 거실로 들어 온다.

불이 다 꺼진 거실에 잠시 서 있는 덕환.


덕환 : (혼잣말, 툴툴) 이 여편네가. 사람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불은 다 꺼 놓고.



S# 18. 인복의 방.

닫혀 있는 방문. 불이 다 꺼져 있고, 침대에 누워 있는 인복.

누워서 방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덕환이 발소리를 내며 맞은 편에 있는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인복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인복 : 아니, 안 그래도 힘들다는 애를 불러내서는 그게 뭐야. 그게.


인복, 닫힌 방문을 노려보더니, 이불을 홱 뒤집어 쓰고 누워 버린다.



S# 19. 택시 안.

뒷자석에서 통화를 하며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고 있는 선일.


선일 : 누나, 소주가 더 마시고 싶었는데 나 진짜 딱 한 병만 더 마시고 싶었거든. 그런데 아버지가 그냥 먼저 가 버리시더라고.



S# 20. 오피스텔 안.

유일, 불 꺼진 거실에서 식탁 위 조명만 켜 놓고 앉아 있다. 식탁 위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다. 유일은 통화를 하며 활짝 열린 방문 안, 하중이 잠들어 있는 걸 힐끔 쳐다본다. 선일의 징징대는 목소리에 손으로 이마를 만진다.


선일 : (E) 누나,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지? 나도 진짜 열심히 사는데, 왜 나를 한심한 취급을 하냐고.


유일, 피곤하다.


유일 :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 내일 파트 알바하러 출근해야 하거든.


유일은 TV 위 벽시계를 쳐다본다. 밤 12시다. 하품이 나온다.


선일 : (E) 나 땜에 못 자고 있는 거야?


유일 : 그건 아냐. 온라인에 글 연재하는 거 끄적이느라.



S# 21. 택시 안.

선일, 눈물이 찔끔.


선일 : 누나는 참 포기란 게 없어. 보면.


택시 기사가 룸미러로 선일을 조심스레 훔쳐보며 소리 없이 혀를 찬다.


선일 : (풀죽은 목소리로) 알았어.


선일은 전화를 끊는다. 괜히 훌쩍이며 슬쩍 택시 미터기를 본다.


선일 : (속엣말) 예린이 보고 내려와달라함 날 죽이려 하겠지? 아, 아버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릴 거면 술이나 마시러 오라고 왜 불러 가지고는.


선일, 머리를 긁적이더니 핸드폰을 쳐다보고 고민하는 듯 하더니 유일에게 메시지를 전송한다.

‘택시 괜히 탔나 봐. 택시비 낼 돈이 없어 (우는 이모티콘)’


선일 : (속엣말) 아씨, 쪽팔려. 누나도 지금 힘들텐데.



S# 22. 작은 방안.

불이 꺼져 있고 활짝 열린 방문 밖으로 보이는 작은 부엌.

유일, 충전기 연결한 핸드폰 코드를 벽 콘센트에 꽂는다. 하중 옆, 자리에 눕는데 알림음이 울린다.

유일, 상체를 일으켜 핸드폰 쪽으로 쑥 엎드리듯 구부려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한다. 선일이다. 유일은 작은 한숨을 쉬더니 은행 앱으로 들어가 남은 잔고를 보며 망설이다가 2만원을 선일에게 이체한다.

핸드폰 모니터를 잠그고 다시 하중 옆에 눕는데 또다시 알림음이 울린다.


유일 : (혼잣말) 잠 좀 자자. 더는 못 보내줘.


유일 상체를 일으켜 상체를 일으켜 핸드폰 쪽으로 쑥 엎드리듯 구부려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저장 안 된 번호로 온 메시지다.


유일 : (속엣말) 이 밤중에도 스팸인가?


하며 확인하는데 유미성이다.


‘하이, 나야 유미성 작가. 그때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거 같아서. 일 다시 하고 싶은 거야? 그래도 우리 동기에 친구였잖아. 나는 이제 메인 작간데, 나한테도 의논 좀 해 주지. 답장 줘. 커피 사줄게.’

선일,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 모니터를 꺼 버린다. 하중 옆에 누우며


유일 : (어이없단 듯 혼잣말) 친구? 너랑 나랑?


유일, 누워서 두 눈을 뜨고 생각에 잠긴다.


유일 : (속엣말) 동기는 맞지. 친했던 건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또.


유일, 하품이 나온다.


유일 : (혼잣말) 그래, 뭐. 일거리 부탁 정도야 해봐도 되겠지?


눈을 감고 잠이 든다.



S# 23. 사무실.

책상 앞에 노트북을 켜 놓고 앉아 있는 미성. 노트북 옆에 놓인 핸드폰을 보며 손가락을 노트북 타자 위에서 까딱까딱하는데


미성 : (혼잣말) 뭐야, 자나? 답장이 없어.


S# 24. 국장실 (회상)

문을 열고 미성이 고개를 쑥 내밀고 애교 있는 미소로 작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작은 초콜릿 상자를 흔들어 보인다.


미성 : 국장님, 당땡길 때 안되셨어요?


골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뭔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던 국장, 초콜릿이 반갑다는 듯 쳐다본다.


국장 : 아, 역시 우리 유작가. 센스 있어.


미성은 국장 책상 앞으로 다가와 초콜릿을 웃으며 내려놓는다. 국장은 냉큼 초콜릿 상자를 열어 한 개를 입안에 넣는다.

미성, 국장의 표정을 살피더니 은근슬쩍


미성 : 그런데 오유일은 웬일로 왔대요?


국장 : (작성하던 걸 작성하며 무심결에 툭) 일거리 달라고, 싱글맘이 됐다나 뭐라나. 아니 10년 만에 찾아와서 무작정 매달린다고 돼 , 그게?



S# 25. 사무실.

재밌다는 듯한 미성의 표정.


미성 : (혼잣말) 그래서 그렇게



S# 26. 인서트.

3화 S# 4.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일의 옷차림.



S# 27. 사무실.

흥미롭다는 듯한 미성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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