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 티의 맛과 달달함, 얼그레이크림라떼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그래도 살다보면...

by OH 작가


어쩌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얼그레이 크림 라떼를 마주 했다. 크림이 들어간 커피는 안 마시는데, 날이 너무도 좋은 날 우연히 마주 했다.


우리가 아는 얼그레이 티의 맛은 고소함도, 달달함도, 담백함도 아니다. 쌉싸름한 맛이다. 입에 착 달라 붙도록 맛있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쌉싸름한 얼그레이 티가 들어간 라떼라니, 더구나 내가 피하는 하얀 크림까지 들어갔다.




얼그레이 크림 라떼는 얼그레이 티에 에스프레소 샷이 들어간다. 그리고 살짝 차갑고 달달한 하얀 크림이 얹어진다. 마지막으로 코코아 가루가 토핑으로 뿌려진다. 아이스만 가능하다.


처음 한 모금 마시면 코코아 가루와 새하얀 크림이 먼저 입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 뒤로 얼그레이 티가 섞인 쌉싸름한 맛을 숨길 수 없는 에스프레소 샷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에스프레소와 쌉싸름함을 숨길 수 없는 얼그레이 티의 맛을 부드럽게 차갑고 달달한 크림과 코코아 가루가 커버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내가 힘들고 가진 게 없어진 상황인데 누굴 배려하랴. 돈 문제로 사람을 외면하고 힘든 말과 행동으로 상처 주는 가족조차 버거워진다. 연락 안하는게 편해진다.


인생은 어느 부분에서나 참으로 불공평하다. 공평한 세상과 공평한 관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 같다.


2년 동안 사람에 대한 고통과 마음이 무너짐을 느끼는 동시에 아이와 살아가야 하는 경제적 고통을 크게 겪어야 했다.


월세가 밀려서 울면서 사정하고 매달리다 쫓겨나야 했고, 핸드폰은 한 달 넘게 수신까지 다 끊겼어야 했고, 아이라도 굶기지 않으려고 가전제품과 팔 수 있는 것들을 당근에 급하게 팔았다.


교회 분들이 듣고 쌀과 컵라면 등을 갖다 주셔서 일단 버텼다. 항상 막판에, 극적으로 어렵게 턱걸이로 해결은 됐다. 살으라는 거구가 싶었다.


그 사이 매달 연금에 15억이 넘는 신축 아파트에 살며 적금 든 여유 돈을 손해보기 싫어하는 부모님, 돈 돈 하며 자식들을 피하는 실체를 봤다. 그렇게 예뻐하던 손자가 배고프다고 2만원도 안되는 간식 좀 사 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도 안하고 전화도 안하고 피하는 모습도 봤다.


갑자기 둘 밖에 없는 자식들이 하나씩 힘들어하는 모습에 본인들도 마음이 부딪겼겠지 싶었다. 혼자라면 도움 청할 나도 아니었다. 아이 때문에 매달려 봤을 뿐이다. 더구나 성향상 아니다 싶으면 더는 매달리지 않는다. 남동생은 끝까지 돈 해 달라고 매달렸었나 보다.


방송작가일 하면서도 집에 손 벌리기 싫어 새벽에 나가 2시간을 강남까지 걸어가 일하고, 또다시 2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집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에서 시간 날때마다 일했다. 순두부집에서 뚝배기 설거지 알바도 하고, 약국 알바도 하며 그냥 묵묵히 버텼다.

밖에서는 항상 열심히 하며 인정 받던 나다. 그 기회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괴롭히며 그 기회들을 본인 손과 입으로 날려 버리는 엄마의 못됨도 참았다. 그래도 나는 성공할거라고 버텼다.

아들, 아들 하는 엄마는 내가 아들 보다 잘 되길 바라지 않으셨나 보다. 남동생도 술 마시고 전화해 "누나는 여자고 나는 장손이고 남자니까, 내가 잘되야지." 할 때도 있었으니까.

모든 상황에서 아빠는 항상 방관자였다. 본인한테만 애교부리고 잘해야만 좋아하셨지 가족들과 제대로 대화란 걸 하며 살지 않으셨으니까.


그런데 요 2년 동안 힘들고 나서 극적으로 팔린 빌라 덕분에 일단 잠시의 소소한 안정은 잡았다. 그래 봤자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 빼고 받은 돈이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빌라 팔리고 나서 남동생은 자꾸 돈을 빌려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나뿐인 남동생이라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편하진 않다. 내 코가 석자라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마음은 그렇지만 이제 다 털고, 다 팔아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계속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빠는 상황이 힘드니 변호사 비 900만원 갚고 나머지는 됐다 하시더니,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3억 5천도 안 되는, 그것도 전세 보증금 빼고 얼마 받지도 않은 빌라가 팔리자마자 돈 더 안 준다고 두고 보잔 식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피해가시더니 연락 끊었다고 괘씸하다 하셨단다.


나는 그냥 웃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한 편으로, 딸은 항상 부모 돈이라도 다 갚고 살았더니 만만하구나 싶었다. 아들은 아무리 돈을 해 줘도 일 원 한 푼 안 갚지만, 아들은 힘드니까다.


딸로 태어난 죄로 아들이 안하는 노력을 해야했다. 부모님 해외 여행 가시면 밤새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해 놓고, 빨래 다 해 놨다. 가족들 생일은 꼭 잊지 않고 챙겼다. 내 생일은 잊어버리고 넘어가도 서운해 하는 내색조차 못했다.

병원에 입원해 입원비며 다 내 돈으로 했는데도 나만 탓하거나 와 보지 않아도 싫은 소리 한 번 안했다.

돼먹지도 않고, 성공도 못하는 방송작가일 한다고 싫어하셔서, 힘들고 아파도 혼자 조용히 버텼다. 일해 주고도 돈 못 받아서 차비조차 없을 때도 힘들단 말 한 마디 안 했다. 도와달라고도 안했다. 알바도 하고 2시간 가까이 걸어서 일하고 다니면서 혼자 견뎠다.


아들은 힘들면 윌세 보증금도 내 주고, 나한텐 "네가 서운하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3년 전에 찾아와 돈 좀 해 달라고 울상이길래 현금으로 천 만원 줬다."고 툭 던지신다.

딸은 어린 손자와 길거리에 나앉든, 집주인에게 무릎 꿇으며 울면서 매달리고 있어도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 연락 한 번 안한다.

길거리 나앉을 위기 속에 이사는 잘했는지 절대 전화 한 통 없다.

아들은 당분간 버티라고 월세 해 주며 이사 잘했는지 걱정돼, 어린 손자 힙시트로 들쳐 안은 딸을 부동산으로 심부름 보낸다. 지인과 약속이 있던 나는 지인과 잠시 부동산에 들려 남동생을 챙겨 주는 심부름을 해야 했다.


딸의 단골 가게에 가서 요즘 딸이 힘들어서 통화 안하니까 딸한테 전화해 물어 보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셨단다.


딸은 딸이다.

지인들도, 옆에서 봐도 절대 공평히 안 대하시는데 공평하다고 우기신단다. 차를 뽑아 준다고 해도" 아들은 그랜저고 딸은 아반떼던데." 하며 웃는다.

딸한테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 해 줬는데.'라며, 마음이 부딪겨서 연락 안하고 조용히 있으면 괘씸하고 꼴보기 싫다는 식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사업 망하고 집 또 안 사줬다고 몇 년 동안 손녀도 안 보여주고 연락 안하다가 기어 들어와도 손녀 챙겨서 함께 미국도 갔다 온다. 아들은 이모들이 먹는 것도 보내주고, 조카 대학 입학했다고 돈도 보내 준다.

딸인 나한텐 아니다. 엄마도 이모들도 몰래 명의 이용할 일 있거나, 심부름 부탁할 거 있을 때만 연락한다.

딸인 나는, 부모 꺼라도 지거 아니면 함부로 안 건드리고 일 원 하나라도 거짓말 안한다는 이유로!


세상 어떤 사이든, 세상 어디든 공평한 건 절대 없다는 걸 뼈져리도록,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과 부딪기고 친분을 쌓는 부분에서 나 스스로 벽을 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냥 거리를 두고 싶다. 타인이든 가까운 사이든 내가 잘 살고, 잘 되지 않으면 좋은 관계 유지란 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을 뿐이다.









이제는 결심한다. 내가 살고, 내가 일단 안 아프고, 내가 행복하고 볼 일이란 걸!


다시는 작년까지와 같은 고통과 배고픔과 힘듦을 겪지 않기 위해 일단 살아가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


그 어떤 가까운 사이도 나를 하찮게 대하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게 하면 일단 거리를 두는 게 맞다.

다 비워 버리고, 다 털어 버리고 남은 게 없는 나부터 챙기고 봐야 한다.


어린 아들이 엄마와 이 일 저 일 겪어 내며 툭 내뱉은 말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기도 행복하다고.


지금은 돈이라는 권력과 힘 앞에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대다. 그 힘든 시대에 어떻게든 살아 남고, 살아내려면 내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어떤 소음도 허락하지 말아야 할 시간이다.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고, 꼭 책임지고픈 아들을 위해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많이 웃는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감사 일기도 자주 쓴다.


누구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이유가 있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이 극대화 되어 있다. 나도 그들처럼 이기심을 찾아야 할 시간일 뿐이다.


살자. 살아내서 어떻게든 잘 되고 나야 주변도 챙길 수 있다. 내가 바로 서고, 제대로 서야 주변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쌉싸름한 얼그레이 티와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삶에 살짝 차갑고 달콤하게 부드러운 크림을 얹자.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이전 19화조금 부드러운 진함, 마끼아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