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드러운 진함, 마끼아토네

부드러운 브라운 빛의 마끼아토네, 작은 잔에 담긴 조금은 부드럽게

by OH 작가



가끔은 예전에 즐겨 마시던 에스프레소가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젠 감당은 안된다. 그럴때 마시는 조금은 부드러운 브라운 빛의 마끼아토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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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끼아토네는 에스프레소처럼 작은 잔에 나온다. 진한 에스프레소 원액 투 샷에 우유를 살짝 섞어 에스프레소 원액을 조금 부드럽게 만든 커피다.


어떤 카페에서는 작은 유리잔에 브라운 빛이 그대로 드러나는 마키아토네를 내 준다. 어떤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처럼 아주 작은 잔에 우유 거품이 살짝 얹은 채 마끼아또라며 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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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으로 미니 잔에 서너 모금만 마시면 끝나는 에스프레소의 부담스러움을 약간의 우유로 부담을 줄여준 커피다.






꽃은 필거다. 우리가 그 성장의 고통을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인생은 사계절과 같다. 겨울이 왔다 가면 봄이 오고, 짧은 봄이 끝나고 나면 더운 여름이 온다. 점점 폭염으로 무더워지는 긴 여름이 지나가고 가면 또 다시 짧은 가을이 온다. 가을의 낙엽이 땅위로 다 떨어져 내리면 또 다시 겨운이 온다. 겨울의 차갑고 시린 추운 바람을 견디고 나면 또 다시 여린 연둣빛으로 새싹이 돋아내고 꽃이 피는 봄이 온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갑자기 닥친 인생의 큰 변화를 몰고 온 선택에 준비 없는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상처 받은 건 나와 내 아이인데 왜 우리가 이렇게 배고프고 힘든 시간들을 겪어야 하는지 원망스럽고 비통했다. 돈 문제로 등 돌린 가족과도 굳이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등돌린 비참한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어린 아들 앞에서 죽기 보다 싫은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아서였다.

한 마디로 인생 최악의 암흑 같은 시간들이었다. 시리도록 춥고 온 몸에 희망이란 것은 눈꼽만큼도 없는 얼어 붙은 한겨울 같았다. 그런데 어찌 됐든 어린 아들과 버텨냈다.


지나고 나서 주변을 둘러 보니 어느 새 봄이 다가오고 있다. 계절적인 봄이 나의 인생에도 봄을 가져다 줄 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삶의 태도가 바뀌긴 했다. 그건 어린 아들 덕이다. 함께 버텨 주고, 함께 이겨내려고 옆에서 두 손 꼭 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아들 덕이다.


내가 깨달은 건 어찌 됐든 길거리에 나앉을 거 같은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든 해결이 됐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으라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만큼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은 나의 간절함이 무너져가는 나와 내 자존심을 붙들었다는 거다.


그 어떤 인생은 어찌 보며 사계절과 같다.

결국 새로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봄은 오게 돼 있다. 결국 열매를 맺고 결실을 보는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시리도록 차갑고 매서운 겨울 바람만 계속 되지는 않는다. 지치도록 무덥고 주저 앉을 거 같은 폭염 속의 여름만 계속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생에 결국 꽃은 필거다. 꽃이 피기까지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버티고 이겨낸다면 말이다.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도 결국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미니 잔에 에스프레소 원액만 담긴 것을 보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압축해 담아 놓은 검은 세상 같다. 하지만 거기에 흰디흰 우유를 조금만 부어도 부드러운 브라운 빛을 띠는 마끼아토네가 된다.


에스프레소의 검은 액체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 선명한 검은 액체도 얼마든지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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